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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영화 2013. 2. 2. 00:06

신수호 86부작 리뷰

드디어 86부작 '신수호'를 마쳤습니다. 말이 86부작이지, 한 편당 40분씩 잡으면 시간이 무려... ^^;; 뮌헨에 와서 잉여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서 손은 안대려고 했는데 결국 시작해버렸네요. 중간중간에 끊기거나 파일 상태가 좋지 않아서 못본 편도 있습니다. 특히나 60회부터 69회까지는 거의 못봤네요. 그래서 정작 수호지의 하이라이트인 108명이 다 모여 천강지살의 운명을 알게 되는 장면을 놓쳤습니다.

사실 삼국지와 비교하기에는 수호지는 어쩌면 역사소설 보다는 무협소설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의 4대 기서라고 불리는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금병매 중에서 수호지는 전쟁과 전투 측면에서 삼국지의 일면을 갖고 있으면서 서유기의 기이성도 보입니다. 그리고 금병매와는 직접적인 스토리 관계로 이어져있습니다. 삼국지에서는 대부분 전투를 병법으로 풀어가는데 반해, 수호지는 도술이나 특별한 인물을 초대해 상황을 해결하는 모습이 많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처음 보았을 때는 삼국지와 비슷한 영웅소설의 느낌을 받았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까 충과 의를 앞세우는 도적집단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108'요괴'의 우두머리인 송강은 삼국지의 유비와 비슷하게 인과 덕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하지만 두령들을 산채로 초대하기 위해서 온갖 술수를 마다하지 않고, 108명이 다 모인 뒤에는 그냥 우두머리로서 다른 지역을 없애야 한다느니 잡아 죽여야 한다느니 하는 말들을 아주 쉽게 하는 인물입니다. '탈을 썼다'라고 까지 하기는 어렵지만, 인의의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규 같은 인물들이 패악을 많이 저지르고 다니지만, 송강은 사실상 그의 '쓸모' 때문에 그를 강하게 제압하지 않는 모습도 보입니다. 오용은 송강을 완성시켜주는 인물이죠.

관승, 호연작, 동평, 장청, 팽기, 한도 같은 인물들은 송강토벌에 실패한 장수들이고 이들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삼국지적 시선'으로 본다면 적장에게 항복한 패장이지요. 휘종(중립), 양산박(선), 고구 등 4대 간신(악)이라는 구도에서 악의 지령을 받아 선을 토벌하다 선에게 감동받아 투항했으니 선이 된 것 입니다. 이는 소설의 근간이 되는 설정이기도 하지만, 조금 비판적으로 바라본다면, 이러한 설정 때문에 양산박이 하는 나쁜 짓들도 정당화되어야 하므로 합리화 된 부분도 많이 보입니다. 탐관오리를 죽이러 가는 과정에서 탐관오리만 죽이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관군들이 희생되며 백성들도 죽지 않을 뿐 꽤나 고생을 하게 되죠.


소설 얘기는 이쯤하고, 드라마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드라마는 소설에 비해서 각색된 것이 거의 없습니다. 수호지는 아주 많은 사건들이 옴니버스식으로 전개되는 소설인데, 드라마라는 장르는 사실 이러한 것을 표현해내기가 매우 쉬운 장르입니다. 소설이 '한편' 이라는 단어로 갑자기 방향을 전환하는 것 처럼 드라마는 그저 새로운 인물이 걸어오는 장면이나, 새 소리가 들리는 하늘을 한번 보여주면 되죠. 때문에 수호지를 드라마로 만드는 것은 적어도 시나리오 구성에 있어서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워낙에 인물들이 많아 처음 수호지를 접하는 시청자들은 누가 누군지 기억도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각색이 없기 때문에 배우들의 비중도 원작대로 가는데, 처음 생신강 사건 이후로 임충, 노지심, 양지, 무송, 송강으로 자연스럽게 초점이 옮겨지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장청-고대수, 왕영-호삼랑, 시진-이규 등의 에피소드에도 적절한 시간을 할애해서 재미집니다. 그래서인지 드라마를 보면서 송강, 오용 급 주연이 아닌 다른 배우들도 이 드라마 꽤 할 만 하겠는데 싶었습니다. 김용 무협 드라마나 신삼국에서 보았을 법한 인물들이 거의 없게 느껴졌는데, 신인배우들 입장에서는 꽤 괜찮은 등용문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대륙의 드라마 답게 어정쩡한 CG처리 -호랑이 때려 잡을 때- 도 간혹 보이지만, 전투씬의 퀄리티는 중국드라마가 점점 발전하고 있음이 눈에 보입니다. 엑스트라의 규모는 말할 것도 없고 예전의 케챱같던 피가 진짜 피처럼 보이기도 하며, 그 많은 인물들의 무술실력이 모두 상당한 수준인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캐스팅도 전체적으로 훌륭합니다. 보통 생각했던 것보다 젊은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게 요즘 사극형 드라마의 추세인데, 중년 배우들이 많이 나온 점이 마음에 들더군요. 너무 얼굴을 많이 본 양지 역 배우가 조금 이질감 느껴지기는 했지만 캐스팅 자체는 잘된 것 같습니다. 드라마를 보기 전에 제가 가장 좋아하던 인물은 소이광 화영과 쌍편 호연작이었는데, 드라마가 끝나고 보니 역시 임충이 갑입니다. 노지심도 아주 훌륭하게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엔딩 부분이었는데요. 삼국지나 수호지나 끝이 아쉬운 소설이기는 하지만, 신삼국이 마지막 엔딩을 각색해서 멋있게 장식한 데 반해서 수호지는 '누구누구는 어디서 잘 살았다~' 하는 설명들로 마무리를 해서 조금 벙쪘습니다. 임충이 육화사에서 병사하는 부분에서 이미 엥? 싶었다가, 나중에 노지심은 원적했다~ 하는 문구를 보고 있자니 뭔가 허무한 느낌마저 들더군요. 끝에 가서는 송강의 사당 얘기를 했는데 이미 그 전에 김이 팍 상해서 여운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긴 시간이었네요. 보통 밤에 시작해서 늦은 새벽까지, 또 느린 부분은 빨리 보고 하면서 거의 한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신삼국에 비해서 결코 모자라지 않은(엔딩 빼고!) 신수호전! 덕분에 초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책도 기억해내고, 그때의 총기 넘치던 제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네요.


* 수호, 수호지, 수호전 어떤 명칭이 정확한 지 몰라 손에 익은 대로 번갈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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