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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영화 2012. 5. 2. 01:49타인의 삶
HGW XX/7 gewidmet, in Dankbarkeit.
참 괜찮은 영화. 어떤 멋진 언어로 이 영화를 표현해야 할 지 나는 잘 모르겠다. 대학 신입생 시절, 당시 유행하던 소형 멀티플렉스가 정문 앞에 하나 생겼는데, 그 건물 벽에 커다란 포스터에 이 영화 포스터가 걸려있었다. 그 진중해 보이는 포스터는 사색적인 영화의 제목과 어우러져 나의 관심을 끌었지만, 5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올 책이 오듯이, 올 영화도 나에게로 온다. 그것도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도서관에서 빌린 책 사이에 자리한, 다음 사람을 위한 따뜻한 쪽지 한 장을 얻게 된 것 처럼 온다.
오늘 갑자기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독일어 수업 덕분이었다. 목소리가 멋있고 특히나 말투가 참 기품있으신 내가 좋아하는 교수님은 생각지도 않게 시청각 수업을 하시겠다며, 무심히 영화를 트셨고 나는 어떤 딴짓을 해볼까 하던 생각을 멈추고 곧바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부족해 다 보지 못했지만, 모처럼 영화를 보고 설렜던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분절된 시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다 본 지금, 나는 행복을 느낀다.
또 한 명의 멋진 배우를 알게 된 것이 감사하다. 세상엔 참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진한 감동을 주는 사람들은 역시 배우가 아닌가 한다. 짧은 지식으로 하는 표현이 적당할지는 모르겠는데, 비즐러 역을 연기한 울리쉬 뮤흐 분은 네오리얼리즘 시대의 어느 이탈리아 영화의 주인공과 같은 느낌을 준다. 영화가 개봉하고 1년 뒤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한편으로는 영화의 감동을 증폭시켜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엘리트로서 비밀경찰학교의 교수였던 자가 우편배달부가 되기까지, 말수가 적고 담담한 비즐러의 성격이 꼭 마음에 든다. 어쩌면 지금은 우편배달부라는 직업이 낭만적이라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뭐 좋다. 긴 말을 할 능력이 없으니 급마무리해야지. <굿나잇앤굿럭>, <피아니스트>, <유령작가>, <블랙북> 같은 영화들과 <염소의 축제>, <소송>, 그리고 <세계문학사>와 같은 책들이 생각난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 혹은 '선한 사람들의 소나타'라는 말과 '게오르그 드라이만' 이라는 이름도 마음에 든다. 마지막에 부드럽게 떠오르는 잔잔한 음률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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