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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독일 교환학생 2012. 10. 15. 08:25독일의 인상
나에게 9월과 10월의 독일은 참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9월에 나는 독일을 매우 싫어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철저하게 외지인이었던 까닭이다. 9월 7일에 독일에 들어와서 곧바로 포르투로 향한 뒤에, 9월 17일이 되어서야 다시 뮌헨으로 도착했다. 그 당시만 해도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 같았다.
문제는 서류 작업이었다. 거주 등록, 계좌 개설, 학교 사무, 비자 받기에 이르기까지 일단 독일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절차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독일의 공무 시간이 매우 짧다는 점, 그리고 그것들이 요일마다 다 다르다는 점이 여러가지 상황을 악화시켰다. 계좌 개설을 했던 슈파카세의 직원은 매우 친절했고, 영어를 잘 못했지만 고객으로 나를 대했기 때문에 편안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지만, 내가 외국인 관청으로 알고 있던 KVR(사실상 뮌헨 시청이다.)에서는 많은 일들이 꼬였다.
이야기를 하자면 꽤 긴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재정보증을 위해서 '슈페어콘토'라는 서류를 받기 위해 은행-kvr-은행-kvr을 왔다갔다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은행에서 슈파콘토라는 월 인출금액이 제한되는 계좌를 만들고, 서류를 받아서 관청에 내는 식이다. 처음에 KVR에서 처리해준다던 블로그 정보를 믿고 갔더니 그것은 사실 은행 소관이었다. 여기서부터 꼬였는데, 은행에 재차 들러 서류를 받아 KVR 2층에 있는 비자 담당 카운터에 갔더니 Abmeldung이라는 것을 해야한다고 안내를 받았다. 그래서 2층을 걸어 내려가서 Abmeldung을 받겠다고 그라운드 카운터에 얘기했더니, 자기네는 그런걸 안한다고 계속 번호표를 주지 않았다. (번호표 기계가 있는게 아니라 사람에게 받는다.) 그래서 다시 올라갔더니 Deregisteration을 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다시 내려가서 번호표맨과 감정을 상한 말싸움 끝에 담당 직원에게 갈 수 있었는데, 담당 직원은 또 5유로짜리 서류를 뽑아줬다. 서류를 들고 다시 올라갔더니, 이게 아니라며 디! 레지스트레이션이라고 자꾸 얘길 한다. 그래서 다시 내려가서 Abmeldung, De!registeration을 계속 얘기했더니 마침내 그 서류를 뽑아줬다.
서류를 가지고 이윽고 비자 담당자와 얘기할 수 있었는데, 이 담당자는 왜 거주지 등록을 해지했냐며 오히려 화를 냈다.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시키는 대로 했다고 영어로 막 얘기를 했더니 잠시 직원들이 모여서 깔깔 거리며 얘기를 하더니, 오늘 니가 한 디레지스트레이션은 다음주에 약속을 잡고 취소하고 다시 레지스트레이션을 한 뒤에 찾아오란다.
이 쯤에서 분노가 폭발한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너희가 오늘 나를 2시간 동안 5번을 왕복시켰는데 결국 삽질을 한거냐고 계속해서 따졌다. 내가 더 열받았던 부분은, 처음에는 매우 오만하게 나를 보던 그 직원들이 내 화가 점점 커지자 눈치를 보고 꼬리를 내린 점이었다. 너무나도 형편없어 보이는 그 모습에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해 굉장히 실망했다. 사실 외국인 비자 담당관이라면 당연히 영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자기는 영어를 못한다며 통역관을 데려 오라는 얘기까지... 이 날의 분노는 앞으로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살면서 기억나는 가장 큰 분노였기 때문에...
아무튼 그 날 이후로는 독일인이 일을 잘한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한적이 없다. 심지어 친구가 교통권을 만들 때도 담당자는 실수를 했다. 결국 그날 그 형편없어 보였던 독일인들은 다음에 오면 줄을 서지 않고 와서 해도 된다며 얘기를 했고, 나는 사이즈가 다른 비자 사진도 그냥 오케이, 슈페어콘토도 그냥 은행에서 떼어준 일반 서류로 갈음할 수 있게 되어서 어쩌면 2시간 고생해서 더 잘된 것일 수도 있었다만... 무튼 요점은 공무원들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나 독일 공무원들은 참 별로였다.
마침 옥토버 페스트 기간이라 술취한 독일인들도 문제였다. 맥주를 워낙 좋아하는 나라다 보니 아침을 맥주로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고 대낮에 대중교통 안에서 맥주를 마시는 건 매우 흔한 일이지만, 옥토버페스트 때는 과연 대단했다. 시비거는 일, 특히 우리에게 다가와 곤니찌와나 니하오라며 놀리는 것은 양반이다. 그런것 보다도, 이 시기의 대중교통은 지옥이다. 너무나도 시끄럽고, 너무나도 지저분하다. 마침 잘츠부르크 여행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밤 열한시가 넘어 중간 쯤에 옥토버페스트에서 맥주를 마신 한 무리가 기차에 탔다. 그러고는 다시 맥주를 까고, 시끄럽게 얘기를 하고, 심지어 음악까지 틀며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나는 여행의 기분을 다 망쳤을 뿐만 아니라 독일인들은 차라리 조용한 일본인들보다도 나은게 하나도 없다며 속으로 크게 욕을 했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아무리 크게 떠들어도 어느 누구도 제지하질 않는다. 서로 개입하지 않는 서양인의 특성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그들이 소음 피해를 당하면서도 조용히 있다는게 놀랍다. 한국이었다면 주변 사람들이 모두 눈치를 주고 뭐라했을 것은 자명하다.
마지막으로 에피소드를 하나 더 말해보면, 집앞에 있는 페니마트에서의 일이다. 가격이 워낙 싸서 내가 즐겨가는 마트인데, 9월 말에 워낙 고정비용이 크고 현금이 고작 20유로 밖에 없었을 때였다. 장을 다 보고 카드로 계산을 하려는데, 점원이 마스터카드를 쓸 수 없단다. 그래서 그러면 미안하다고 다시 갖다놓고 오겠다고 얘길 했더니, 뜻밖에도 갑자기 표정이 일그러지며 독일어로 뭐라뭐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영어로 내가 지금 돈이 없으니 할 수 없다고, 내가 직접 다 갖다놓을 거라고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뭔가 혼잣말을 자꾸 중얼거리며 니 지갑에 있는 돈으로 계산을 하라고 돈을 빼낼려고 하기까지 했다. 황당하면서 한편으로 어이가 없었던 나는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서, 내가 무슨 잘못했냐고, 왜 화내는지 전혀 이해를 할 수 없는데 독일은 원래 이런 곳이냐고, 카드가 안되고 이 돈은 내가 지금 못쓰는 돈인데 어떻게 하냐고 막 따졌다. 뒤에 사람들이 몇명 있었기 때문에 내가 영어할 줄 아는 분 계시면 내가 뭐 잘못한게 있는지 통역까지 해달라고 했다. 우유만 빼고 물건을 다시 갖다놓고 잔돈을 받으려는데 점원이 언제 그랬냐는듯 웃으며 계산을 해준다. 그리고서는 '여기는 도이칠란드. 영국이 아니다. 독일어로 해라.' 라며 얘기를 하는데 더 이상 상대하기가 싫어서 그냥 쌩하고 나와버렸다. 독일의 동네 마트에서 영어가 통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계산을 해놓고 다시 물리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하며 그것을 고객 앞에서 대놓고 드러냈던 게 참 어이없는 경험이었다.
이게 내 9월의 독일이었다. 같이 온 교환학생 친구들 그 누구도 독일을 좋아하지 않았고, 특히 독일인은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점에 만장일치했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하기 때문에 사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내가 이 당시에 만났던 사람들이 다들 별로였을 뿐. 최악의 독일 공무원을 겪고 나니 사실 그 이후로는 무뎌졌다. 10월에 나는 개강을 했고, 학교에서도 독일인들을 만났다. 대체로 독일인들의 프라이드는 하늘을 찌른다. 프랑스인들도 조금 그런 면이 있는데, (특히 파리 출신은 백프로였다.) 독일, 특히 바바리아 지방 친구들은 그 프라이드가 남다르다. 오죽하면 교수들도 독일과 바바리아를 따로 설명하기까지 한다. 둘다 밥맛인건 똑같다.
내가 독일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다른 교환학생 친구의 버디가 초대한 식사 모임에 가서 부터 였다. 그들은 사람들을 초대해서 식사를 하고 파티를 즐기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여자애들이었는데, 대화를 하다보니 이윽고 민감한 부분에 이르렀다. 터키 사람들이 이민을 많이 오는데 너희는 기분이 어떠냐냐는 것이었다. 영어를 매우 잘하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내가 잘 알아 들을 수 있었는데, 대뜸 얘네들이 던진 말은 '우리는 할 말이 없다. 왜냐면 알다시피... 우리가 주변 나라에 나쁜 짓을 많이해서... 너도 알겠지만, 히틀러. 그래서 우리는 사실 목소리를 높일 수도 없고 과거얘기가 나오면 그저 미안하게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터키에서 이민을 많이 온다고 해서 우리가 나서서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였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일본인과 독일인의 역사인식에 대한 차이였다. 독일인들은 적어도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있고, 그러한 측면에서 정직한 것은 사실이다. 이 부분만은 독일인들이 좋게 보인다. 또 이들은 규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물론 한국에 있는 많은 여행 블로그에 묘사된 것 처럼 무단횡단을 안한다는 모습은 없지만, 기본적으로 규칙과 사적인 관계 사이에서 이들은 규칙편에 서있다. '시간 엄수'라는 측면에서 독일인들은 완벽한데, 수업을 지각하는 사람들은 대개 터키나 스페인 애들이다. 얘네들은 독일과는 대척점에 서있는 성격을 가진 애들이다. 아직까지 독일인이 지각한 것은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독일인이 좋은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정이 많은 스페인애들이 훨씬 좋다. 다만 독일인의 인상을 좋게 해준 것은 그들의 모습이다. 님펜부르크 성에서 휘슬을 불고 있을때 조깅을 하다가 엄지를 치켜세워준 독일인, 햇빛을 쬐고 싶어서 일광욕을 하러 나온 독일인,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이것저것 맛을 보라며 친절을 베푸는 독일인, 열살 남짓 되어 보이는 아들과 단둘이서 알리안츠 아레나를 찾아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독일인. 그런 독일인의 '모습'들은 꽤나 인상깊다.
한인 식당과 한인 마트의 한국인 주인장들의 그다지 정이 느껴지지 않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사실 한국인이라고 이들보다 나을 건 없다. 공무원들은 더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상대성 때문에 독일인의 '모습'이 더 좋아보이는 건지도 모른다. 내년 2월에 한국으로 떠날 때 나는 독일인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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