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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독일 교환학생 2012. 10. 17. 09:03

독일 수업과 한국

미국과 핀란드같은 다른 나라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보내고 있는 친구들과는 다르게, 사실 나는 과제의 압박을 거의 느끼지 않고 있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도 수업시간에 어떤걸 배웠는지만 잘 표시해놓고 시험기간 며칠 전에 한번 정리해놓고 그걸 외우는게 내 공부의 전부였던지라 그때 역시 과제의 압박을 느끼진 않았던 것 같다. 아, 물론 아무것도 몰랐던 1학년 1학기 때는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인다는게 뭔지 알았었지만.

여기서 내가 듣는 수업은 총 5개. 하나는 내가 평소에 관심이 있었고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듣고자 했던 Airline Management, 두번째는 Intercultural Communication(IC), 다음으로 Management across the borders and cultures, American Humor & British Humour, German Grammar in English. 이름은 이와 같다. 항공경영과 독일 문법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적당히 대학교 2학년생 정도면 무난하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교양 수준의 수업이다.

기본적으로 독일의 수업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일반적인 렉쳐 강의가 있다. Airline Management나 German Grammar in English가 그러한 과목인데, 원론적인 수준의 내용을 교수가 강의하는 방식이다. 학생들은 대부분 질문하기 보다는 질문을 받는 상황일 때가 많다. 교수법 자체는 별로 메리트가 없지만, 한국에서 그다지 선호되지 않는 '랩탑'과의 시너지는 상당하다. 한국에서는 누군가가 수업시간에 노트북을 꺼내면 교수에 따라서 좋은 소리를 못들을 가능성이 있지만, 여기서는 그런 일은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수업에서 교재가 없고 강의노트와 파워포인트를 통해 내용이 진행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필기를 꼬박꼬박할 수 밖에 없다. 덧붙이자면 교재가 없는 이유는 교재가 비싸서다. 적어도 내가 듣는 모든 과목은 책이 필요가 없다. 교수는 아예 책값이 비싸기 때문에 학생들한테 책을 사라고 할 수 없으니, 심층적으로 알아보고 싶으면 책을 한번 살펴보면 좋을 것이라고 한다.

세미나 형식의 강의에서는 교수가 앞에서 이론 같은 것을 열심히 설명하고, 학생들은 언제든지 손을 들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유럽 애들은 손을 들어 말하는 것을 전혀 망설이지 않는다. 알더라도 조용히 있는 한국과는 다르게 여기서는 조금만 알아도 일단 입을 떼고 보는 것 같다. 교수는 그러한 반응들을 어느 정도 예상하거나, 혹은 그렇지 않았더라도 그 반응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질문을 해나가는 형식이다. 그러다 보면 다시 교수가 진짜로 말하고 싶은 얘기로 돌아오게 된다. 이러한 방법은 이해력 측면에서 매우 훌륭하다. 앞에서 언급한 수업 가운데 Management across the borders and cultures가 이러한 형식이다.

Intercultural Communication이라는 과목은 교수가 국가나 문화간의 '일반적인' 특징들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면,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자기의 나라에 대해서 말을 보태고, 다양한 툴을 통해서 그 성격들을 분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유럽에는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이라는 교환학생 시스템이 있어서 매우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수업들이 꽤나 잘 돌아간다. 만일 한국 대학교에서 이러한 것을 시도한다면 고작해야 대다수의 한국인, 중국인들과 몇몇 인도, 일본, 유럽인들이 자리를 겨우 메워 한국인들은 막상 말도 제대로 못할 것 같은데, 여기서는 한국인이 오히려 유니크하기 때문에 적절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어서 도움이 된다. 아무튼, 이렇게 액티비티 위주의 과목은 언제나 흥미롭다.

사실 앞의 것을 얘기하기 위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수업시간의 분위기다. 일단 수업시간에 자는 친구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수업이 연강으로 일주일에 한번만 진행되지만, 적어도 2주가 지난 지금 수업시간에 자는 친구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 렉쳐 강의의 경우 때로 조는 친구들이 있지만, 대부분 잠이 오면 그냥 나가서 화장실을 가거나 한다. 한국에서 처럼 엎드려 자는 친구는 아마 앞으로도 못볼 것 같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바깥 출입이 자유롭다. 출석체크가 그다지 중요치 않고, 180분 수업에 150분을 늦어도 수업을 마치고 출석을 체크할 수 있다. 당연히 수업 중간에 왔다갔다 하는 것도 가능하며, 심지어 중간에 짐을 싸고 나가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교수는 그에 대해 정말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얘기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수업 중간에 나가는 학생을 막기 위해 앞뒤로 두번 출석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 유럽인들이 매우 놀랄 것 같다. 한국의 문화가 별로고, 유럽이 선진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아마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그러할 것이다. 다만 교수가 단지 자신이 가르치는 것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것들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적어도 수업에 관한 한, 유럽의 방식이 나에게는 더 맞다. 한국의 교육이 창의성을 죽인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로 맞다. 한국의 교육이 암기 위주의 교육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말도 맞다. 심지어 이곳의 경우 과제를 내줘도 그냥 한번 잘 알고 오라는 뜻으로 내는 경우가 많다. 다른 유럽의 대학들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또 수업 마다 또 다를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다음 시간에 어떤 부분을 하니까 미리 읽고 답을 찾아와라." 라는 식의 과제가 보통 주어진다. 물론 본격적으로 수업이 무르익으면 수많은 과제가 쏟아지겠지만 말이다. 시험의 경우에도 한국에서는 다 외워서 치는 것이 많다. 물론 계산이 필요한 과목들은 계산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듣는 대부분의 과목들은 암기가 기본으로 깔려있다. 반면에 여기에서는 큰 그림을 그린다. 아직 시험을 치르지 않았지만, 교수의 예고에 따르면, 적어도 시험 문제 자체가 '수출의 6가지 요소를 쓰시오' 따위의 한심한 수준은 아니다. 대개 'Incongruity Theory는 무엇이고 이에 대해 설명해보라'의 수준에서, '당신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 진출을 위해서 고려해야 할 위험요소들에 대해 생각해봐라' 정도의 수준이다. 당연히 후자의 경우가 훨씬 사고력을 많이 요하고, 그에 따른 성장성을 보장한다.


위 기사를 보면, 한국의 방식이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은 쉽게 할 것이다. 물론 교육은 역시 핀란드가 좋고, 한국이 나쁘다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측면에서 다소 치우쳐서 작성된 느낌도 있지만 어쨌거나 효율적인 측면에서 한국은 그다지 훌륭한 교육을 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도 있고, 또 훌륭한 전달력을 가진 지식채널e '핀란드 편'도 있으니 한번 보면 좋을 것 같다.

아무튼 상황이 다 다르고, 뮌헨이냐 베를린이냐, LMU냐 HM이냐, 이과냐 문과냐에 따라 수업의 질도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느낀 것은 독일의 것이 '낫다'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서술형이라는 허울 좋은 틀을 갖춘, 실상 해당 부분 전체 암기를 요하는 시험 방식은 절대 백점짜리 방식이 아니다. 또 사실상 책의 저자 대신 교수가 책의 내용을 주르륵 읽어주면서 이것은 이러하다, 저것은 저러하다라고 외치는 방식은 오히려 빵점에 가까운 수업이다. 언제나 참여가 필요하고, 아는 만큼 얻어갈 수 있는 이곳의 방식은 한국에서 책과 씨름하던 나에게는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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