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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영화 2013. 12. 11. 00:08

비포 선라이즈 (Before Sunrise, 1995)


비포선라이즈를 보았다. 모든 사건과 주인공의 대사, 표정, 몸짓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조금만 일찍 보았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뉴욕을 떠나기 전에 보았다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조금 더 현명했었을텐데. 물론 나는 키가 크고 파란 눈이 귀여운 미국남자는 아니지만. 그러고보니 제시는 나중에 작가가 되었던가..?


인상 깊은 장면이 정말 많아 영화를 두번 더 돌려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는다면, 비엔나 거리의 부랑자 시인이 즉석에서 지어준 시를 읽어주는 장면과 헤어지기 전 기차 앞에서 온몸으로 아쉬워하며 발을 동동 구르던 장면, 그리고 그녀가 기차를 타고 떠난 뒤 다시 돌아보지 않고 터벅터벅 걸어나오던 제시가 뒤를 한번 더 돌아보던 장면을 꼽고 싶다.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지 않은 이유도, 터벅터벅 걷던 이유도, 플랫폼을 나온 뒤에 그제서야 다시 뒤를 돌아본 이유도 잘 알것 같다. 나에게 올 책이라면 꼭 내가 가장 그것을 필요로 할 때 오는 것처럼, 이 영화는 나에게 그런 의미로 기억될 것 같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 그 자체로 충분히 감동적이었고, 내가 지금 여기에서 현재를 살아갈 힘을 주는 영화였다.


영화를 기억하기 위해 시크릿 가든의 Song for a new beginning과 부랑자 시인의 시의 한 부분을 올려본다. 새로운 시작을 노래하는 음악인데, 괜히 짠하고 슬픈 감정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새로운 시작은 늘 아쉬운 어제와 등을 붙이고 있기 때문일테지. 낮에 뉴스를 보니 지금 뉴욕엔 눈이 많이 온다던가. 한겨울에 그곳은 꽤 춥겠구나. 그곳에서 따뜻한 겨울 음악에 진한 카푸치노를 곁들여 높은 곳에 올라 도시의 야경을 바라볼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언제나 모든 일이 잘될 거라 긍정을 노래하는 보티첼리의 천사와 함께!





I am a delusioned angel.

I am a fantasy parade.

I want you to know what I think.

Don't want you to guess anymore.

You have no idea where I came from.

We have no idea where we're going.


Launched in life. Like branches in the river.

Flowing downstream, caught in the current.

I'll carry you. You'll carry me.


That's how it could be.

Don't you know me,

Don't you know me by now.




떠난 자리를 돌아보고,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릴 때 머릿 속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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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영화 2013. 2. 2. 00:06

신수호 86부작 리뷰

드디어 86부작 '신수호'를 마쳤습니다. 말이 86부작이지, 한 편당 40분씩 잡으면 시간이 무려... ^^;; 뮌헨에 와서 잉여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서 손은 안대려고 했는데 결국 시작해버렸네요. 중간중간에 끊기거나 파일 상태가 좋지 않아서 못본 편도 있습니다. 특히나 60회부터 69회까지는 거의 못봤네요. 그래서 정작 수호지의 하이라이트인 108명이 다 모여 천강지살의 운명을 알게 되는 장면을 놓쳤습니다.

사실 삼국지와 비교하기에는 수호지는 어쩌면 역사소설 보다는 무협소설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의 4대 기서라고 불리는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금병매 중에서 수호지는 전쟁과 전투 측면에서 삼국지의 일면을 갖고 있으면서 서유기의 기이성도 보입니다. 그리고 금병매와는 직접적인 스토리 관계로 이어져있습니다. 삼국지에서는 대부분 전투를 병법으로 풀어가는데 반해, 수호지는 도술이나 특별한 인물을 초대해 상황을 해결하는 모습이 많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처음 보았을 때는 삼국지와 비슷한 영웅소설의 느낌을 받았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까 충과 의를 앞세우는 도적집단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108'요괴'의 우두머리인 송강은 삼국지의 유비와 비슷하게 인과 덕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하지만 두령들을 산채로 초대하기 위해서 온갖 술수를 마다하지 않고, 108명이 다 모인 뒤에는 그냥 우두머리로서 다른 지역을 없애야 한다느니 잡아 죽여야 한다느니 하는 말들을 아주 쉽게 하는 인물입니다. '탈을 썼다'라고 까지 하기는 어렵지만, 인의의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규 같은 인물들이 패악을 많이 저지르고 다니지만, 송강은 사실상 그의 '쓸모' 때문에 그를 강하게 제압하지 않는 모습도 보입니다. 오용은 송강을 완성시켜주는 인물이죠.

관승, 호연작, 동평, 장청, 팽기, 한도 같은 인물들은 송강토벌에 실패한 장수들이고 이들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삼국지적 시선'으로 본다면 적장에게 항복한 패장이지요. 휘종(중립), 양산박(선), 고구 등 4대 간신(악)이라는 구도에서 악의 지령을 받아 선을 토벌하다 선에게 감동받아 투항했으니 선이 된 것 입니다. 이는 소설의 근간이 되는 설정이기도 하지만, 조금 비판적으로 바라본다면, 이러한 설정 때문에 양산박이 하는 나쁜 짓들도 정당화되어야 하므로 합리화 된 부분도 많이 보입니다. 탐관오리를 죽이러 가는 과정에서 탐관오리만 죽이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관군들이 희생되며 백성들도 죽지 않을 뿐 꽤나 고생을 하게 되죠.


소설 얘기는 이쯤하고, 드라마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드라마는 소설에 비해서 각색된 것이 거의 없습니다. 수호지는 아주 많은 사건들이 옴니버스식으로 전개되는 소설인데, 드라마라는 장르는 사실 이러한 것을 표현해내기가 매우 쉬운 장르입니다. 소설이 '한편' 이라는 단어로 갑자기 방향을 전환하는 것 처럼 드라마는 그저 새로운 인물이 걸어오는 장면이나, 새 소리가 들리는 하늘을 한번 보여주면 되죠. 때문에 수호지를 드라마로 만드는 것은 적어도 시나리오 구성에 있어서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워낙에 인물들이 많아 처음 수호지를 접하는 시청자들은 누가 누군지 기억도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각색이 없기 때문에 배우들의 비중도 원작대로 가는데, 처음 생신강 사건 이후로 임충, 노지심, 양지, 무송, 송강으로 자연스럽게 초점이 옮겨지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장청-고대수, 왕영-호삼랑, 시진-이규 등의 에피소드에도 적절한 시간을 할애해서 재미집니다. 그래서인지 드라마를 보면서 송강, 오용 급 주연이 아닌 다른 배우들도 이 드라마 꽤 할 만 하겠는데 싶었습니다. 김용 무협 드라마나 신삼국에서 보았을 법한 인물들이 거의 없게 느껴졌는데, 신인배우들 입장에서는 꽤 괜찮은 등용문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대륙의 드라마 답게 어정쩡한 CG처리 -호랑이 때려 잡을 때- 도 간혹 보이지만, 전투씬의 퀄리티는 중국드라마가 점점 발전하고 있음이 눈에 보입니다. 엑스트라의 규모는 말할 것도 없고 예전의 케챱같던 피가 진짜 피처럼 보이기도 하며, 그 많은 인물들의 무술실력이 모두 상당한 수준인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캐스팅도 전체적으로 훌륭합니다. 보통 생각했던 것보다 젊은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게 요즘 사극형 드라마의 추세인데, 중년 배우들이 많이 나온 점이 마음에 들더군요. 너무 얼굴을 많이 본 양지 역 배우가 조금 이질감 느껴지기는 했지만 캐스팅 자체는 잘된 것 같습니다. 드라마를 보기 전에 제가 가장 좋아하던 인물은 소이광 화영과 쌍편 호연작이었는데, 드라마가 끝나고 보니 역시 임충이 갑입니다. 노지심도 아주 훌륭하게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엔딩 부분이었는데요. 삼국지나 수호지나 끝이 아쉬운 소설이기는 하지만, 신삼국이 마지막 엔딩을 각색해서 멋있게 장식한 데 반해서 수호지는 '누구누구는 어디서 잘 살았다~' 하는 설명들로 마무리를 해서 조금 벙쪘습니다. 임충이 육화사에서 병사하는 부분에서 이미 엥? 싶었다가, 나중에 노지심은 원적했다~ 하는 문구를 보고 있자니 뭔가 허무한 느낌마저 들더군요. 끝에 가서는 송강의 사당 얘기를 했는데 이미 그 전에 김이 팍 상해서 여운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긴 시간이었네요. 보통 밤에 시작해서 늦은 새벽까지, 또 느린 부분은 빨리 보고 하면서 거의 한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신삼국에 비해서 결코 모자라지 않은(엔딩 빼고!) 신수호전! 덕분에 초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책도 기억해내고, 그때의 총기 넘치던 제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네요.


* 수호, 수호지, 수호전 어떤 명칭이 정확한 지 몰라 손에 익은 대로 번갈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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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영화 2012. 11. 10. 03:57

인사이드 잡 (Inside Job, 2010)


진작부터 보려고 벼르다가, 마침 오늘 땡겨서 보게 된 인사이드 잡. 영화 폴더에 넣어야 할 지, 다큐멘터리 폴더에 넣어야 할 지 고민하다가 그냥 영화 폴더에 넣기로 했다. 전형적인 아메리칸 스타일의 다큐멘터리였다. 예전에 다큐멘터리사 수업시간에 '마이클 무어 뒤집어보기'라는 영화를 본 이후로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다큐멘터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지만, 영화 자체는 꽤 잘 만들어졌다. 몇 장면 캡쳐 + 매우매우매우 간단한 설명.


친절하게도 본격적인 씬이 들어가기 전에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설명을 해준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인한 세계 금융위기를 다루는 매체는 아주 많지만, 아마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이슬란드의 선진 경제가 무너진 것으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사실 아이슬란드가 경제 강국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한번 공부를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슬란드 경제 붕괴와 미국 경제 위기 '주범'들의 행태를 연관시킨 것이 설득력이 있었다.


결국 모든 것의 시작은 저 대단한 '가진 자' 들이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 것에서 부터 비롯된 것. 경영학 전공자로서 거의 대부분의 높으신 분들이 더 많이 갖고자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매우 불편했다. 학력과 부의 대물림의 상관관계를 느낄 수 있었던 부분. 사실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는게, 세상에 그 분야에 빠삭한 사람이 널려있지는 않다는 점이 인사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고려해볼만한 요소였을 것이다. 과거의 실패가 있었지만, 그 실패를 해본 사람이기 때문에 이번엔 다를 것이라는 믿음이랄까? 그런 것들이 이들이 여전히 높은 자리에 있는데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메리칸 스타일 아니랄까봐 마지막 씬을 자유의 여신상으로 가져갔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장황하지 않고 간결한 다큐멘터리였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그 메시지의 내용을 잘 전달했다. 한번 쯤 봐도 좋을 영화. 다만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일방적인 관점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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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영화 2012. 5. 2. 01:49

타인의 삶

HGW XX/7 gewidmet, in Dankbarkeit.

참 괜찮은 영화. 어떤 멋진 언어로 이 영화를 표현해야 할 지 나는 잘 모르겠다. 대학 신입생 시절, 당시 유행하던 소형 멀티플렉스가 정문 앞에 하나 생겼는데, 그 건물 벽에 커다란 포스터에 이 영화 포스터가 걸려있었다. 그 진중해 보이는 포스터는 사색적인 영화의 제목과 어우러져 나의 관심을 끌었지만, 5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올 책이 오듯이, 올 영화도 나에게로 온다. 그것도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도서관에서 빌린 책 사이에 자리한, 다음 사람을 위한 따뜻한 쪽지 한 장을 얻게 된 것 처럼 온다.

오늘 갑자기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독일어 수업 덕분이었다. 목소리가 멋있고 특히나 말투가 참 기품있으신 내가 좋아하는 교수님은 생각지도 않게 시청각 수업을 하시겠다며, 무심히 영화를 트셨고 나는 어떤 딴짓을 해볼까 하던 생각을 멈추고 곧바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부족해 다 보지 못했지만, 모처럼 영화를 보고 설렜던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분절된 시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다 본 지금, 나는 행복을 느낀다.

또 한 명의 멋진 배우를 알게 된 것이 감사하다. 세상엔 참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진한 감동을 주는 사람들은 역시 배우가 아닌가 한다. 짧은 지식으로 하는 표현이 적당할지는 모르겠는데, 비즐러 역을 연기한 울리쉬 뮤흐 분은 네오리얼리즘 시대의 어느 이탈리아 영화의 주인공과 같은 느낌을 준다. 영화가 개봉하고 1년 뒤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한편으로는 영화의 감동을 증폭시켜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엘리트로서 비밀경찰학교의 교수였던 자가 우편배달부가 되기까지, 말수가 적고 담담한 비즐러의 성격이 꼭 마음에 든다. 어쩌면 지금은 우편배달부라는 직업이 낭만적이라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뭐 좋다. 긴 말을 할 능력이 없으니 급마무리해야지. <굿나잇앤굿럭>, <피아니스트>, <유령작가>, <블랙북> 같은 영화들과 <염소의 축제>, <소송>, 그리고 <세계문학사>와 같은 책들이 생각난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 혹은 '선한 사람들의 소나타'라는 말과 '게오르그 드라이만' 이라는 이름도 마음에 든다. 마지막에 부드럽게 떠오르는 잔잔한 음률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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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영화 2012. 4. 5. 01:12

건축학개론


모처럼 영화관에서 제대로 된 영화를 본 듯 하여 기분이 좋다. 그저 그런 영화의 홍수 속에서 무언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영화랄까. 벚꽃이 흩날리는 4월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영화가 있을까 싶다.


무엇보다 나의 대학교 1학년때를 떠올릴 수 있어서 참 아련하고도 행복했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 그 시절의 그 마음, 나름대로의 순수함. 돈 주고 살 수 있다면 사고 싶은 그 생생한 에너지가 그리워 영화를 보는 내내 안타까움 또한 느꼈다. 납뜩이의 허접하지만 진정어린 조언을 보고 있자니, 내 친구들 역시 멍청했던 나에게 그렇게 했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지금은 조금 담담하달까? 대학교 1학년 때만 해도 정말 막무가내였고, 중고딩때의 '세상의 주인공이 된 듯한' 패기와는 또 다르게, 내 주먹이 세고 니 주먹이 세고가 아닌, 단지 깝죽대면서 느끼는 그 우월감의 희열이 삶을 지배했었는데... 아무튼 나의 오늘 역시 훗날에 그리움의 대상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또 오늘이 얼마나 소중한가 싶기도 하다.


음... 칭찬 하나. 군더더기가 없는 영화였다. 내가 한국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 이유는 구태의연한 방식의 스토리텔링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일부러 웃긴 장면을 넣는다거나, 여기서는 울려야겠다, 놀래켜야겠다는 생각들이 너무 표면적으로 다가오는 영화들을 그동안 많이 접해왔다. 그에 반해 <건축학개론>의 납뜩이가 보여주는 멋진 대사들은 얼마나 깜찍한가? 게다가 플래시백이 잦은 영화들 특유의 산만한 전개가 이 영화에서는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깔끔하게 지나갔다. 만족스러운 부분이다.


칭찬 둘. 사심이 잔뜩 담겨있는 부분인데... 아무래도 그와 그녀들의 미모를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쯤되면 다같이 외쳐보는 연!정!훈!. 한가인은 정말 영화를 잘 골랐다. 하지만 관객들은 더 영화를 잘 골랐다. '수지학개론'이라던 이 영화는 한가인이 등장할 때면 스토리는 까맣게 잊은 채, 눈이 얼마나 큰 지, 피부는 얼마나 흰 지, 연정훈이 얼마나 부러운 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예전에 SBS에서 했던 '나쁜남자'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그 때의 모습과 비슷하면서도 괜히 허술한 모습이 더욱 매력적이었던... 사심이든 뭐든 일단 찬양...


대학에서 나름 영화를 배워왔지만, 미술감상 하는 것과 비슷하게도, 아직 내공이 부족한 지라 단순히 그림의 느낌만이 중요하다. 혹은 그림의 이름이나. 그래서 말인데, 굳이 지적할만한 부분을 못찾겠다.


영화평론가들 처럼 멋지게 포스팅하고, 사람들 반응도 느끼고 댓글도 보고 하면 참 좋겠지만 그러기엔 글이 너무 개인적이라 한 주먹 비판거리도 못 된다. 그저 나는 이 영화를 봤더니, 내 나름대로의 어렸던 시절이 떠올라 괜시리 마음이 따뜻하면서도 시리다. 나는 7080세대도 아니고, 심지어 여전히 대학생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 어렸던 친구들도 이 영화를 보고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을까. 그랬다면 우리들의 추억은 언제든지 이어질 수 있는 아름다운 어제의 나 일텐데... 긴말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건축학 개론 봤드나?" 


이렇게 물어보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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