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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독일 교환학생 2012. 10. 17. 09:03

독일 수업과 한국

미국과 핀란드같은 다른 나라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보내고 있는 친구들과는 다르게, 사실 나는 과제의 압박을 거의 느끼지 않고 있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도 수업시간에 어떤걸 배웠는지만 잘 표시해놓고 시험기간 며칠 전에 한번 정리해놓고 그걸 외우는게 내 공부의 전부였던지라 그때 역시 과제의 압박을 느끼진 않았던 것 같다. 아, 물론 아무것도 몰랐던 1학년 1학기 때는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인다는게 뭔지 알았었지만.

여기서 내가 듣는 수업은 총 5개. 하나는 내가 평소에 관심이 있었고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듣고자 했던 Airline Management, 두번째는 Intercultural Communication(IC), 다음으로 Management across the borders and cultures, American Humor & British Humour, German Grammar in English. 이름은 이와 같다. 항공경영과 독일 문법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적당히 대학교 2학년생 정도면 무난하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교양 수준의 수업이다.

기본적으로 독일의 수업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일반적인 렉쳐 강의가 있다. Airline Management나 German Grammar in English가 그러한 과목인데, 원론적인 수준의 내용을 교수가 강의하는 방식이다. 학생들은 대부분 질문하기 보다는 질문을 받는 상황일 때가 많다. 교수법 자체는 별로 메리트가 없지만, 한국에서 그다지 선호되지 않는 '랩탑'과의 시너지는 상당하다. 한국에서는 누군가가 수업시간에 노트북을 꺼내면 교수에 따라서 좋은 소리를 못들을 가능성이 있지만, 여기서는 그런 일은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수업에서 교재가 없고 강의노트와 파워포인트를 통해 내용이 진행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필기를 꼬박꼬박할 수 밖에 없다. 덧붙이자면 교재가 없는 이유는 교재가 비싸서다. 적어도 내가 듣는 모든 과목은 책이 필요가 없다. 교수는 아예 책값이 비싸기 때문에 학생들한테 책을 사라고 할 수 없으니, 심층적으로 알아보고 싶으면 책을 한번 살펴보면 좋을 것이라고 한다.

세미나 형식의 강의에서는 교수가 앞에서 이론 같은 것을 열심히 설명하고, 학생들은 언제든지 손을 들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유럽 애들은 손을 들어 말하는 것을 전혀 망설이지 않는다. 알더라도 조용히 있는 한국과는 다르게 여기서는 조금만 알아도 일단 입을 떼고 보는 것 같다. 교수는 그러한 반응들을 어느 정도 예상하거나, 혹은 그렇지 않았더라도 그 반응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질문을 해나가는 형식이다. 그러다 보면 다시 교수가 진짜로 말하고 싶은 얘기로 돌아오게 된다. 이러한 방법은 이해력 측면에서 매우 훌륭하다. 앞에서 언급한 수업 가운데 Management across the borders and cultures가 이러한 형식이다.

Intercultural Communication이라는 과목은 교수가 국가나 문화간의 '일반적인' 특징들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면,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자기의 나라에 대해서 말을 보태고, 다양한 툴을 통해서 그 성격들을 분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유럽에는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이라는 교환학생 시스템이 있어서 매우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수업들이 꽤나 잘 돌아간다. 만일 한국 대학교에서 이러한 것을 시도한다면 고작해야 대다수의 한국인, 중국인들과 몇몇 인도, 일본, 유럽인들이 자리를 겨우 메워 한국인들은 막상 말도 제대로 못할 것 같은데, 여기서는 한국인이 오히려 유니크하기 때문에 적절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어서 도움이 된다. 아무튼, 이렇게 액티비티 위주의 과목은 언제나 흥미롭다.

사실 앞의 것을 얘기하기 위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수업시간의 분위기다. 일단 수업시간에 자는 친구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수업이 연강으로 일주일에 한번만 진행되지만, 적어도 2주가 지난 지금 수업시간에 자는 친구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 렉쳐 강의의 경우 때로 조는 친구들이 있지만, 대부분 잠이 오면 그냥 나가서 화장실을 가거나 한다. 한국에서 처럼 엎드려 자는 친구는 아마 앞으로도 못볼 것 같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바깥 출입이 자유롭다. 출석체크가 그다지 중요치 않고, 180분 수업에 150분을 늦어도 수업을 마치고 출석을 체크할 수 있다. 당연히 수업 중간에 왔다갔다 하는 것도 가능하며, 심지어 중간에 짐을 싸고 나가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교수는 그에 대해 정말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얘기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수업 중간에 나가는 학생을 막기 위해 앞뒤로 두번 출석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 유럽인들이 매우 놀랄 것 같다. 한국의 문화가 별로고, 유럽이 선진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아마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그러할 것이다. 다만 교수가 단지 자신이 가르치는 것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것들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적어도 수업에 관한 한, 유럽의 방식이 나에게는 더 맞다. 한국의 교육이 창의성을 죽인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로 맞다. 한국의 교육이 암기 위주의 교육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말도 맞다. 심지어 이곳의 경우 과제를 내줘도 그냥 한번 잘 알고 오라는 뜻으로 내는 경우가 많다. 다른 유럽의 대학들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또 수업 마다 또 다를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다음 시간에 어떤 부분을 하니까 미리 읽고 답을 찾아와라." 라는 식의 과제가 보통 주어진다. 물론 본격적으로 수업이 무르익으면 수많은 과제가 쏟아지겠지만 말이다. 시험의 경우에도 한국에서는 다 외워서 치는 것이 많다. 물론 계산이 필요한 과목들은 계산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듣는 대부분의 과목들은 암기가 기본으로 깔려있다. 반면에 여기에서는 큰 그림을 그린다. 아직 시험을 치르지 않았지만, 교수의 예고에 따르면, 적어도 시험 문제 자체가 '수출의 6가지 요소를 쓰시오' 따위의 한심한 수준은 아니다. 대개 'Incongruity Theory는 무엇이고 이에 대해 설명해보라'의 수준에서, '당신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 진출을 위해서 고려해야 할 위험요소들에 대해 생각해봐라' 정도의 수준이다. 당연히 후자의 경우가 훨씬 사고력을 많이 요하고, 그에 따른 성장성을 보장한다.


위 기사를 보면, 한국의 방식이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은 쉽게 할 것이다. 물론 교육은 역시 핀란드가 좋고, 한국이 나쁘다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측면에서 다소 치우쳐서 작성된 느낌도 있지만 어쨌거나 효율적인 측면에서 한국은 그다지 훌륭한 교육을 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도 있고, 또 훌륭한 전달력을 가진 지식채널e '핀란드 편'도 있으니 한번 보면 좋을 것 같다.

아무튼 상황이 다 다르고, 뮌헨이냐 베를린이냐, LMU냐 HM이냐, 이과냐 문과냐에 따라 수업의 질도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느낀 것은 독일의 것이 '낫다'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서술형이라는 허울 좋은 틀을 갖춘, 실상 해당 부분 전체 암기를 요하는 시험 방식은 절대 백점짜리 방식이 아니다. 또 사실상 책의 저자 대신 교수가 책의 내용을 주르륵 읽어주면서 이것은 이러하다, 저것은 저러하다라고 외치는 방식은 오히려 빵점에 가까운 수업이다. 언제나 참여가 필요하고, 아는 만큼 얻어갈 수 있는 이곳의 방식은 한국에서 책과 씨름하던 나에게는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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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독일 교환학생 2012. 10. 15. 08:25

독일의 인상

나에게 9월과 10월의 독일은 참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9월에 나는 독일을 매우 싫어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철저하게 외지인이었던 까닭이다. 9월 7일에 독일에 들어와서 곧바로 포르투로 향한 뒤에, 9월 17일이 되어서야 다시 뮌헨으로 도착했다. 그 당시만 해도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 같았다.

문제는 서류 작업이었다. 거주 등록, 계좌 개설, 학교 사무, 비자 받기에 이르기까지 일단 독일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절차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독일의 공무 시간이 매우 짧다는 점, 그리고 그것들이 요일마다 다 다르다는 점이 여러가지 상황을 악화시켰다. 계좌 개설을 했던 슈파카세의 직원은 매우 친절했고, 영어를 잘 못했지만 고객으로 나를 대했기 때문에 편안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지만, 내가 외국인 관청으로 알고 있던 KVR(사실상 뮌헨 시청이다.)에서는 많은 일들이 꼬였다.

이야기를 하자면 꽤 긴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재정보증을 위해서 '슈페어콘토'라는 서류를 받기 위해 은행-kvr-은행-kvr을 왔다갔다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은행에서 슈파콘토라는 월 인출금액이 제한되는 계좌를 만들고, 서류를 받아서 관청에 내는 식이다. 처음에 KVR에서 처리해준다던 블로그 정보를 믿고 갔더니 그것은 사실 은행 소관이었다. 여기서부터 꼬였는데, 은행에 재차 들러 서류를 받아 KVR 2층에 있는 비자 담당 카운터에 갔더니 Abmeldung이라는 것을 해야한다고 안내를 받았다. 그래서 2층을 걸어 내려가서 Abmeldung을 받겠다고 그라운드 카운터에 얘기했더니, 자기네는 그런걸 안한다고 계속 번호표를 주지 않았다. (번호표 기계가 있는게 아니라 사람에게 받는다.) 그래서 다시 올라갔더니 Deregisteration을 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다시 내려가서 번호표맨과 감정을 상한 말싸움 끝에 담당 직원에게 갈 수 있었는데, 담당 직원은 또 5유로짜리 서류를 뽑아줬다. 서류를 들고 다시 올라갔더니, 이게 아니라며 디! 레지스트레이션이라고 자꾸 얘길 한다. 그래서 다시 내려가서 Abmeldung, De!registeration을 계속 얘기했더니 마침내 그 서류를 뽑아줬다.

서류를 가지고 이윽고 비자 담당자와 얘기할 수 있었는데, 이 담당자는 왜 거주지 등록을 해지했냐며 오히려 화를 냈다.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시키는 대로 했다고 영어로 막 얘기를 했더니 잠시 직원들이 모여서 깔깔 거리며 얘기를 하더니, 오늘 니가 한 디레지스트레이션은 다음주에 약속을 잡고 취소하고 다시 레지스트레이션을 한 뒤에 찾아오란다.

이 쯤에서 분노가 폭발한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너희가 오늘 나를 2시간 동안 5번을 왕복시켰는데 결국 삽질을 한거냐고 계속해서 따졌다. 내가 더 열받았던 부분은, 처음에는 매우 오만하게 나를 보던 그 직원들이 내 화가 점점 커지자 눈치를 보고 꼬리를 내린 점이었다. 너무나도 형편없어 보이는 그 모습에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해 굉장히 실망했다. 사실 외국인 비자 담당관이라면 당연히 영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자기는 영어를 못한다며 통역관을 데려 오라는 얘기까지... 이 날의 분노는 앞으로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살면서 기억나는 가장 큰 분노였기 때문에...

아무튼 그 날 이후로는 독일인이 일을 잘한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한적이 없다. 심지어 친구가 교통권을 만들 때도 담당자는 실수를 했다. 결국 그날 그 형편없어 보였던 독일인들은 다음에 오면 줄을 서지 않고 와서 해도 된다며 얘기를 했고, 나는 사이즈가 다른 비자 사진도 그냥 오케이, 슈페어콘토도 그냥 은행에서 떼어준 일반 서류로 갈음할 수 있게 되어서 어쩌면 2시간 고생해서 더 잘된 것일 수도 있었다만... 무튼 요점은 공무원들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나 독일 공무원들은 참 별로였다.

마침 옥토버 페스트 기간이라 술취한 독일인들도 문제였다. 맥주를 워낙 좋아하는 나라다 보니 아침을 맥주로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고 대낮에 대중교통 안에서 맥주를 마시는 건 매우 흔한 일이지만, 옥토버페스트 때는 과연 대단했다. 시비거는 일, 특히 우리에게 다가와 곤니찌와나 니하오라며 놀리는 것은 양반이다. 그런것 보다도, 이 시기의 대중교통은 지옥이다. 너무나도 시끄럽고, 너무나도 지저분하다. 마침 잘츠부르크 여행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밤 열한시가 넘어 중간 쯤에 옥토버페스트에서 맥주를 마신 한 무리가 기차에 탔다. 그러고는 다시 맥주를 까고, 시끄럽게 얘기를 하고, 심지어 음악까지 틀며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나는 여행의 기분을 다 망쳤을 뿐만 아니라 독일인들은 차라리 조용한 일본인들보다도 나은게 하나도 없다며 속으로 크게 욕을 했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아무리 크게 떠들어도 어느 누구도 제지하질 않는다. 서로 개입하지 않는 서양인의 특성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그들이 소음 피해를 당하면서도 조용히 있다는게 놀랍다. 한국이었다면 주변 사람들이 모두 눈치를 주고 뭐라했을 것은 자명하다.

마지막으로 에피소드를 하나 더 말해보면, 집앞에 있는 페니마트에서의 일이다. 가격이 워낙 싸서 내가 즐겨가는 마트인데, 9월 말에 워낙 고정비용이 크고 현금이 고작 20유로 밖에 없었을 때였다. 장을 다 보고 카드로 계산을 하려는데, 점원이 마스터카드를 쓸 수 없단다. 그래서 그러면 미안하다고 다시 갖다놓고 오겠다고 얘길 했더니, 뜻밖에도 갑자기 표정이 일그러지며 독일어로 뭐라뭐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영어로 내가 지금 돈이 없으니 할 수 없다고, 내가 직접 다 갖다놓을 거라고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뭔가 혼잣말을 자꾸 중얼거리며 니 지갑에 있는 돈으로 계산을 하라고 돈을 빼낼려고 하기까지 했다. 황당하면서 한편으로 어이가 없었던 나는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서, 내가 무슨 잘못했냐고, 왜 화내는지 전혀 이해를 할 수 없는데 독일은 원래 이런 곳이냐고, 카드가 안되고 이 돈은 내가 지금 못쓰는 돈인데 어떻게 하냐고 막 따졌다. 뒤에 사람들이 몇명 있었기 때문에 내가 영어할 줄 아는 분 계시면 내가 뭐 잘못한게 있는지 통역까지 해달라고 했다. 우유만 빼고 물건을 다시 갖다놓고 잔돈을 받으려는데 점원이 언제 그랬냐는듯 웃으며 계산을 해준다. 그리고서는 '여기는 도이칠란드. 영국이 아니다. 독일어로 해라.' 라며 얘기를 하는데 더 이상 상대하기가 싫어서 그냥 쌩하고 나와버렸다. 독일의 동네 마트에서 영어가 통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계산을 해놓고 다시 물리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하며 그것을 고객 앞에서 대놓고 드러냈던 게 참 어이없는 경험이었다.


이게 내 9월의 독일이었다. 같이 온 교환학생 친구들 그 누구도 독일을 좋아하지 않았고, 특히 독일인은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점에 만장일치했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하기 때문에 사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내가 이 당시에 만났던 사람들이 다들 별로였을 뿐. 최악의 독일 공무원을 겪고 나니 사실 그 이후로는 무뎌졌다. 10월에 나는 개강을 했고, 학교에서도 독일인들을 만났다. 대체로 독일인들의 프라이드는 하늘을 찌른다. 프랑스인들도 조금 그런 면이 있는데, (특히 파리 출신은 백프로였다.) 독일, 특히 바바리아 지방 친구들은 그 프라이드가 남다르다. 오죽하면 교수들도 독일과 바바리아를 따로 설명하기까지 한다. 둘다 밥맛인건 똑같다.

내가 독일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다른 교환학생 친구의 버디가 초대한 식사 모임에 가서 부터 였다. 그들은 사람들을 초대해서 식사를 하고 파티를 즐기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여자애들이었는데, 대화를 하다보니 이윽고 민감한 부분에 이르렀다. 터키 사람들이 이민을 많이 오는데 너희는 기분이 어떠냐냐는 것이었다. 영어를 매우 잘하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내가 잘 알아 들을 수 있었는데, 대뜸 얘네들이 던진 말은 '우리는 할 말이 없다. 왜냐면 알다시피... 우리가 주변 나라에 나쁜 짓을 많이해서... 너도 알겠지만, 히틀러. 그래서 우리는 사실 목소리를 높일 수도 없고 과거얘기가 나오면 그저 미안하게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터키에서 이민을 많이 온다고 해서 우리가 나서서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였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일본인과 독일인의 역사인식에 대한 차이였다. 독일인들은 적어도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있고, 그러한 측면에서 정직한 것은 사실이다. 이 부분만은 독일인들이 좋게 보인다. 또 이들은 규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물론 한국에 있는 많은 여행 블로그에 묘사된 것 처럼 무단횡단을 안한다는 모습은 없지만, 기본적으로 규칙과 사적인 관계 사이에서 이들은 규칙편에 서있다. '시간 엄수'라는 측면에서 독일인들은 완벽한데, 수업을 지각하는 사람들은 대개 터키나 스페인 애들이다. 얘네들은 독일과는 대척점에 서있는 성격을 가진 애들이다. 아직까지 독일인이 지각한 것은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독일인이 좋은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정이 많은 스페인애들이 훨씬 좋다. 다만 독일인의 인상을 좋게 해준 것은 그들의 모습이다. 님펜부르크 성에서 휘슬을 불고 있을때 조깅을 하다가 엄지를 치켜세워준 독일인, 햇빛을 쬐고 싶어서 일광욕을 하러 나온 독일인,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이것저것 맛을 보라며 친절을 베푸는 독일인, 열살 남짓 되어 보이는 아들과 단둘이서 알리안츠 아레나를 찾아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독일인. 그런 독일인의 '모습'들은 꽤나 인상깊다.

한인 식당과 한인 마트의 한국인 주인장들의 그다지 정이 느껴지지 않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사실 한국인이라고 이들보다 나을 건 없다. 공무원들은 더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상대성 때문에 독일인의 '모습'이 더 좋아보이는 건지도 모른다. 내년 2월에 한국으로 떠날 때 나는 독일인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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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독일 교환학생 2012. 10. 14. 00:00

오늘의 생각

뮌헨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한 것 같고, 미뤄놨던 포스팅을 차차 하자는 생각에 리뉴얼을 해봤다. 마음에 드는 스킨이 없어 적당히 심플한 것을 골라 이래저래 css를 건드려 보았다. 상단 텍스트가 마음에 안들지만, 포토샵 없이 맥북으로 작업하려니 익숙치가 않아서 그냥 대충 해두기로 했다.

지난 포스팅이 무려 1달 전의 일이니 그동안 꽤 많은 일들이 생겼다. 기억나는대로 말해보자면, 나는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바이에른 뮌헨의 홈경기를 봤고, 잘츠부르크에 당일치기로 여행을 다녀 왔다. 또 개강을 했고 벌써 과제가 나왔다. 독일 박물관, 알테 피나코텍, 노이에 피나코텍, 님펜부르크 궁전을 차근차근 둘러보았고, 거주지 등록, 계좌 개설, 교통권, 학생증, 비자까지 모두 해결했다. 이 모든 걸 포스팅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거 같다.

다른 여러 유익한 블로그들을 보자니 여기 내 공간이 남들에게 보여주기 조금 부끄러운 공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블로그에는 독자들이 원하는 정보들이 많지만, 내 블로그의 글은 심지어 정보제공 목적임에도 불구하고 내 시시한 코멘트가 대부분이더라. 뭐 어쨌거나 '페소아, 사라마구, 보르헤스를 위하여!' 나 '뮌헨 교환학생의 우당당탕 라이프'와 같은 간판을 달진 않았으니 그냥저냥 봐줄만 하겠...지? 앞으로도 쭉 내키는 대로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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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있는 하루

내 글은 점점 지쳐 이제는 머릿속에서 맴돌지도 않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로 인해 뇌는 그저 관성에 따라 지시하고 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여기 서있는지 잊은지 꽤 된 것 같고, 나는 오늘 뭐해먹지, 내일 뭐해먹지, 오늘은 얼마를 썼으며 내일은 또 얼마를 쓰게 될까, (심지어 유통기간도 확인하지 않으면서), 한국은 몇시고 나는 언제쯤 컴퓨터를 켜고 있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 아닌 '판단'들로 겨우 하루를 영위하고 있다.

여긴 새롭지만 마냥 낯설지 않은 환경이고, 모든 것이 서프라이징한 유럽의 생활은 이미 익숙함이라는 관성으로 대체되었고, 나는 전혀 글을 쓰지 않고 있다.

다음 주면 개강, 어떻게 남은 5개월을 보내야 하나. 조급해하지는 않는데 뭔가 목적의식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한글로 된 책을 읽고 싶다. 생각도 좀 하고 싶다. You can, I have to로 시작하는 매크로 언어를 내일도 쓰고 싶지 않다.

집 밖으로 나오기 전엔 정말 하나도 몰랐었다. 한국에 있을 땐 내가 어디에 가도 뒤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나와보니 생각했던 모든 것과 완전히 다르다. 이제 나는 외국에서 살아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겪는 것은 아예 다른 차원의 것이다. 정신을 좀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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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 6 - 국제학생증, 환전, 짐싸기

그간 포스팅할 일들이 우르르 생기는 바람에 못하고 있다가, 코펜하겐에 와서야 이렇게 하고 있다.

출국을 위해 수많은 준비를.... 했다.

우선 외환은행 윙고 체크카드 겸용인 isic 국제학생증을 하나 만들었다. 나중에 EU학생증이 생기니까 그닥 필요없을 수도 있는데 우선 포르투갈+스페인을 다녀올 때라도 써보려고 하나 만들었다. 듣자하니 기차 이동만 해도 학생 할인이 된다하니 얼추 비슷하게 할인을 받을 것 같기도 하다. 가격은 14000원. 사진은 생략!


그리고 환전 역시, 610만원을 가지고 몽땅 바꿔버렸다. 송금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나는 무식해서 단순한걸 좋아한다. 그냥 큼직하게 바꿔서는 청바지 주머니 안쪽에 실로 꼬매서 위험부담을 줄였다. 한가지 단점이라면 잘때도 청바지를 입고 잔다는 점 ^^;; 아쉬웠던 점은 환율이 몇 년 사이에 최저를 찍는 1383을 목격하고도... 게으름 때문에 결국 1423인 날에 환전을 해서 수수료 물고 1428원에 했다는 사실이다. 40원씩 4290유로를 바꿨으니... ㅜ.ㅜ 피같은 16만원을 날린거...


마침 출국 전날 우리 학교도 개강이라, 학교에 가서 반가운 얼굴들을 한번씩 다 만나고 여자친구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여친느님은 나에게 스웨덴 비누를 선물해주셨다:) 6개월 간 떨어져 있어야 해서 많이 그립겠지만, 이것도 좋은 경험이겠거니 싶다. 금방 돌아갈테니...


짐을 출국 이틀 전에 싸기 시작해서, 당일 아침까지 챙기고 있는 바람에 가기 전에 조금 촉박했다. 짐싸기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다. 우선 교환학생을 위해 짐을 싸는 사람들은 당장 6개월 혹은 1년치 짐을 다 싸야 하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스칸디나비아 항공의 수화물 규정이 캐리어 23kg + 기내 수화물 8kg 였기 때문에 굉장히 이를 맞추기가 어려웠다. 내가 갖고 있던 캐리어도 그리 크지 않은 데다 겨울 옷까지 꽁꽁 싸매려니 오마이갓... 가서 돈을 아껴쓰기 위해 조금이라도 돈들겠다 싶은 물품들은 꼬박꼬박 싸가기까지 했으니... 그리하여 탄생한 나의 짐은 이렇다.


잠깐 설명을 하자면, 22.5kg 캐리어 + 9.15kg 배낭 + 4kg 손가방/무릎담요 + 겨울양털패딩 + 노트북/양복 마이/야구모자를 다... 손에 쥐고 들고 갔다... 혹여나 교환학생 가려는 친구는 꼭 기내용 캐리어+적당한 크기의 가방을 챙기도록...


스칸디나비아의 수화물 규정에 대해서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내 짐은 22.5kg라는 기적적인 숫자를 나타냈고, 김해공항 아시아나 카운터는 전혀 엄격하지 않았다. 초과했어도 봐줬을 법 하다. 북경에서 갈아탔을 때도 별 다른 검사는 없었다. 다만 나는 기내에 8kg 짜리 하나에 클러치백 정도만 들고 가야 하는 줄 알고 사진에 보이는 뻘짓을 했으니... 참 출국이란 여러번 겪어봐야 할 일인가보다.


짐을 쌀 때 나는 Numbers를 이용했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한국을 뜬다. 이제 나에게는 6개월이 남아있다. 정말 멋진 표정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며... 다음 포스팅은 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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