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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유럽 여행 2012. 10. 31. 16:42

체코 프라하 #1. 여행의 기록

체코 프라하 여행 기록

(12.10.31 ~ 11.01, 2박 2일)

* (금액), [입장하지 않은 곳]


10월 30일 (뮌헨 -> 프라하)

23시 30분 유로라인 버스를 타고 프라하 도착. (9유로, 이후 체코 크로나) -> ATM 인출(1000) -> 칫솔 구입(22) -> 일회권 구입해서 Sir Toby's Hostel로 이동(24) -> 숙박비 계산(243)

* 떠나는 날 낮에 숙소까지 가는 방법만 폰으로 찍어서 갔던 기억, 꾸물대다 늦게 나와 버스를 놓칠까 마음이 급했던 기억, 오밤중에 숙소를 못찾아 헤맸던 기억, 숙소에서 보관함을 실수로 망가뜨렸던 기억.


10월 31일 (프라하 1일)

아침 숙소에서 흰 소세지 구이 -> 일일권 구입(60) -> [국립박물관] -> 바츨로프 광장 -> 기념품 컵 구입(49) -> [팔라디움] -> [via musica] -> 구시가지 광장, 얀 후스 동상, [틴 성당], 천문시계, 성 미쿨라슈 교회, [나로드니 미술관] -> 유대인 지구 -> 마네스 다리(Manesu most) -> 카프카 박물관(120) -> 엽서 (30) -> 까를교 -> 뜨레들로(60) -> 존 레논 벽 -> 아이들 성당 -> ATM 인출(600) -> KFC 버거(29) -> 숙소에서 라면/프리비어

* 아무런 정보 없이 그저 발길 닿는대로 걸었던 기억, 마네스 다리 앞에서 사진을 찍어달라는 관광객이 얼마면 되냐고 물었던 기억, 사진에 보이는 곳에서 백조의 발을 봤던 기억.


11월 1일 (프라하 2일)

아침 숙소에서 메밀소바 -> 일일권 구입(60) -> 프리투어 참가(?유로) -> 바츨로프 광장 -> 프라하 성(125), 베네시 동상, [로레타 성당], 4조원 건물, [스트라호프 수도원], 황금소로 -> 카프카 누이집에서 기념품 달력 구입(100)-> 꼴레뇨, 필스너 맥주(180) -> 성 비투스 대성당 -> 까를교 -> 천문시계 -> 전망대 보려했으나 실패 -> 맥도날드 버거(20), 핫와인(30) -> 돈 지오반니 마리오네뜨 인형극(400) -> 맥도날드 버거(20) -> 플로렌스 터미널에서 빈으로 이동

* 파울 클레 달력을 살까 고민하다 결국 클림트와 프리드리히를 샀던 기억(무하를 샀었어야 했는데...), 벨벳 맥주가 우리 바로 앞 테이블에서 동이 나 못먹었던 기억, 비투스 대성당에서 투어 가이드 님께서 누워서 사진을 찍어주셨던 기억, 조마조마 플로렌스로 이동해서 맥도날드 버거 하나를 더 먹을 수 있었던 기억.



- 여행경비 : 1720KC (약 103200원)

- 최다지출 : 인형극(400), 숙박비(243), 꼴레뇨(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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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오늘의 생각 2012. 10. 28. 04:47

내 인생의 책들

"글을 쓰려는 생각을 버려라. 그 대신 글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보라. 세상으로 나가라. 해적도 되어보고, 보르네오의 왕도 되어보고, 소련의 노동자도 되어보라. 기본적인 신체적 욕구를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생활을 해라." ... 몇 년 동안 이렇게 생활하고 나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시기에 도달하면 글을 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페이스북을 하던 중에 군시절 후임 녀석의 글을 보게 되었다. 언젠가 읽었던 글이다. 버트란트 러셀의 '행복의 정복'. 내 인생의 책을 몇 권 꼽자면 아마 이 책이 열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것 이다. 문득 내 독서의 역사랄까, 그리 깊지도 멀지도 않은 내용이지만 한번 무작정 되돌아보고 싶어졌다.


- 내 인생의 첫 시리즈, "셜록홈즈 전집"

내가 기억하기로 내 인생의 첫 책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읽었던 셜록홈즈 전집이었다. 어쩌면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수도 있다. 1권이 사라진 지옥선이라는 제목이었고, A5 사이즈로 총 30권짜리의 전집이었다. 삼촌이 사둔 것이었는데, 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한권 두권 읽기 시작해서 아예 30권을 전부 통째로 집에 들고와서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이 때부터 나는 책장을 꾸미는 것이 즐거웠다. 그 이후로 물론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거나, '엄마도 모르는 100가지 과학 이야기' 혹은 게임북(요즘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하이퍼텍스트 처럼 A라고 생각하면 30페이지로, B라고 생각하면 31페이지로 가라는 식의 책이다.) 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었다.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친척집에 다녀올 때면, 꼭 서점에 들러 책을 한권씩 사오곤 했던 기억이 난다. 셜록홈즈 전집 덕분에 그 이후로 나는 꾸준히 추리소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모리스 르블랑의 뤼팽 시리즈를 친구놈과 함께 돌려보기도 했었다. 나중에는 애거서 크리스티나 앨러리 퀸을 좋아했다. 


- 가장 영향이 컸던 책, "삼국지"

그 다음으로 내가 기억하는 지점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그 친구 집에 있던 '수호전'을 읽었던 것이다. 총 10권짜리의 수학의 정석만한 책이었는데, 간간이 삽화가 들어있었다. 이후로 나는 삼국지를 빌려 읽었고, 중국 고전소설 매니아가 되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관련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심지어는 삼국지 관련 홈페이지를 만들기도 했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는 요즘처럼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와 같은 것들이 대중화되어 있지 않았고, 개인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었는데, 우리끼리 용어로 '삼국지계'라고 불렀던 삼국지 사이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었다. 순위사이트라는 개념도 있어서, 삼국지 관련된 사이트 중에 어떤 사이트가 몇번째로 잘나가냐 하는 것까지 매기는 문화도 있었다. 사이트의 가장 중요한 컨텐츠로는 '모의전쟁'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토론을 통해서 승패를 가리고 승리하면 다른 진영의 도시 하나를 얻는 시스템이었다. 그리하여 저 삼국지라는 책 덕분에 나는 중학교 3년, 고등학교 1년간 웹디자인을 공부했을 뿐만 아니라, 토론까지 자주 하게 되었으니 어찌보면 지금의 나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경험이었을 수도 있겠다.


- 서재

문득 초등학교 6학년 때 잘사는 친구네 집에서 서재를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신 부모님은 책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학구적인 분도 아니셨기 때문에 우리 집에는 내가 산 책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내 버킷리스트의 꼭대기에는 항상 내 서재를 갖는 것이라는 문구가 자리잡게 되었다.


- 지적 허영

중고등학교 시절엔 고전에 빠져들었다. 한창 내가 세상의 중심인 것 같은 나이. 내가 주인공이고 나머지는 어쩌면 들러리,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나를 중심으로 프로그램 되어 있을 거라는 좁은 프레임에 갇혀 있던 그 나이. 이것은 거만함이라기 보다는,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그 각자를 위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아무튼 이 시절에 나는 책에 대한 허영이 컸던 것 같다. 책을 꾸준히 사모으는 것에 대해 스스로 뿌듯해했었던지, 옷을 사고 외식을 하는 돈은 너무나도 아까웠지만 책을 사는 일은 당연한 일이 되었고, 한달 용돈이 훨씬 넘는 20만원치 책을 사기도 했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게시판이 있었는데, 그 게시판에는 책장을 자랑하거나 책을 리뷰하고 추천하는 글들이 매일 같이 올라왔었다. 자연 내 여가의 중요한 부분은 그러한 글들을 보면서 리스트를 만들고, '꼭 갖고 싶은 그 책'을 사모으는 것이 되었다. 책장이 채워질수록 읽지 않은 책도 많아졌다. 이 당시 사모았던 책은 주로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나온 시리즈들이었는데, 주로 폴 오스터, 움베르토 에코, 파트리크 쥐스킨트, 아멜리 노통브, 안톤 체호프, 오르한 파묵의 책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작가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와 아멜리 노통브.

흥미로운 것은 다행스럽게도(?) 내가 이 당시에 나의 지적 허영을 경계했다는 점이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얘기를 언제나 듣고 있었지만, 사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지 않았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고, 아는 듯이 무언가에 대해서 토론을 했지만, 어쩌면 아는 것은 단지 제목과 작가 뿐이지 않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물어보던 시기였다. 어린 나이라 그랬던지 쉽게 극복되지 않았던 이 생각은 군에 가서야 사라지게 되었다.


- 대학 시절의 책, "이사카 코타로"

대학에 들어 오면서는 가벼운 책들, 이사카 코타로의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사카 월드라고 부르는 그의 책들은 주인공이 저마다 달랐는데, 어떤 책의 주인공이 다른 책에서는 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소설들이 센다이라는 일본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설정은 매우 흥미로웠다. 처음 읽었던 책은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였다. 아마 1학년 가을 쯤 되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쉽게 읽히는 코타로의 소설을 즐겨 읽기 시작했다. 한 13편 정도 읽은 것 같다. 코타로는 '다빈치 코드'의 댄 브라운처럼 영화를 서술하듯이 대사 위주로 글을 쓰기 때문에 속도감이 있어 마치 영화를 한 편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코타로의 책 중에 나는 '오듀본의 기도'와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를 가장 좋아한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친구들에게 선물도 자주했었다. 묘하게 신비하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설이다. 이 책을 쓸 때만 해도 코타로는 꽤 괜찮은 작가였다. (심지어 오듀본의 기도는 그의 데뷔작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나치게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다보니 내용이 너무 가벼워졌고, 짜임새가 엉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2009년 겨울에 '그래스호퍼'를 마지막으로 코타로의 책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어졌다. 하지만 다른 책들은 몰라도 '오듀본의 기도'와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믿어도 좋다!


- 미드는 재미 없어, 중드가 재밌어.

나는 중국 무협소설을 굉장히 좋아한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김용의 무협만을 좋아한다. 한국 판타지, 무협, 중국의 여타 무협 장르들은 그다지 재미가 없다. 김용의 무협은 총 14편인데, 모두가 중국의 시대적인 배경을 아우르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내가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확실히 수호전과 삼국지 때문일 것이다. 고2 이후로 이 시리즈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한참 노다메 칸타빌레나 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외국 드라마들이 유행할 당시에도 나는 '소오강호'나 '연성결'같은 드라마를 다운받아서 밤새 보곤 했으니, 이제서야 말하지만 누군가에겐 '오덕'같아 보였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아직도 미드나 일드보다는 짜임새는 덜하지만 김용의 무협 드라마가 더 좋다. 굳이 이유를 덧붙이자면, 미드는 지나치게 치밀하려 하고, 일드는 마음에 드는 스토리가 없다. CG도 티나고 내용도 터무니 없는 얘기지만 일단 사극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 중드가 재밌다.


- 군시절의 책들

사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내용은 여기 있다. 어차피 이 긴 글을 읽는 독자는 아무도 없을거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만일 여기까지 읽었다면, 내가 앞의 모든 책들과 지금 말하려는 책들 사이에 구분선을 두고 '어린 시절의 책'과 '군시절의 책'을 다르게 얘기하고 싶어한다는 점을 알아주면 좋겠다.

24시간 3교대 크루 근무, 11개월 왕고, 기지 도서실. 이러한 조건 덕분에 나는 책이며 영화며 군시절에 원없이 볼 수 있었다. 24시간 크루 근무를 한 덕분에 근무 시간 외에는 거의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의 혜택을 받아 충분한 자유시간을 누릴 수가 있었고, 11개월이나 왕고였기 때문에 그 크루 근무 스케쥴을 내가 짤 수 있었다. 또 우리 기지에는 기지 도서실이 있었는데 소장된 책이 매우 많지는 않았으나 20대 청년들을 타겟으로 하는 터라 있을 책은 다 있었다. 

앞서 언급했던 코타로를 멀리하게 되었던 이유는 군시절 나의 관심이 정통 글쓰기에 있었던 탓이다. 다큐멘터리 피디를 꿈꾸며 토익이나 한자 자격증, 몸을 만들고 기타를 치는 것에 꾸준한 흥미를 느낄 수 없었던 나는 군대에서 아예 2년 동안 책을 읽음으로써 글쓰기에 대해 공부해 보기로 했다.

25개월 간의 군생활 가운데, 훈련소와 휴가를 제외하면 약 20개월 간 나는 180권의 책을 읽었다. 처음의 목표는 300권이었지만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영화공부를 한답시고 고전들을 매일 야근 때마다 보지 않았다면, 어쩌면 250권 정도는 읽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지적 허영을 끝내자는 스스로의 다짐 때문에 빌려놓고 읽지 않았거나 혹은 대충 읽은 책들은 모두 안읽은 것으로 여기기로 했다. 

빌린 책들은 날짜를 적고 평점을 매겼다. 아쉽게 그 평점이 적힌 다이어리가 한국에 있어서 지금 완전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아마 최고 평점을 받았던 책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인 것 같다.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산도르 마라이의 '열정',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와 같은 소설들도 9점을 넘게 받았다. 또 카프카의 책들이나 '백년 동안의 고독', 몇몇 훌륭한 한국 소설들에도 좋은 평점을 줬었다.

한편 '금강경'을 읽으려고 시도해봤으나 너무 구절이 어려워 도중에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가장 두꺼운 책은 '세계문학사'였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를 찬양해 마지 않는 그 책 덕분에 문학사에 대해 조금 체계가 잡혔'었던' 적도 있었다. 보르헤스의 책들을 열심히 읽었던 기억도 난다. 마침 기지도서실에 민음사에서 나온 전집이 있었는데,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서 읽고 나서 또 따로 주문했다. 다행히 누구도 보르헤스의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방해없이 2년 동안 그 책들을 독차지할 수가 있었다. '보르헤스의 지팡이'와 같은 일종의 해설집도 열심히 빌려보았었다. 이 모든 하나하나가 괜찮건 혹은 그렇지 않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장본인들이다.


- 최고의 책

하지만 내가 군시절에 읽은 책 가운데 가장 대단했던 책은,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다. 우연히 BAT실(활주로에서 버드스트라이크 방지를 위해 새를 쫓는 역할을 하는데 같은 중대 소속이었다.)에서 발견한 주인없는 책이었는데, 책을 읽는 내내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들, 내가 오랜 시간에 걸쳐 깨달은 것들을 완벽한 언어로 적어내려가고 있는 이 책은 사실 몽테뉴와 페소아의 생각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잘 버무린 것이다. 아직도 이 책의 첫 페이지를 펼치며 느낀 감정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우리 모두는 여러가지 색깔로 이루어진 누더기. 헐겁고 느슨하게 연결되어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펄럭인다. 그러므로 우리와 우리 자신 사이에도, 우리와 다른 사람들 만큼이나 많은 다양성이 존재한다.'

이 이후로 나는 페소아의 열렬한 팬이 되었고, 실제로 리스본 여행에서 페소아의 무덤을 보기 위해 제로니모스 수도원을 고생 끝에 가기도 했으니 나란 놈에게 책의 영향력은 과연 엄청나다. (작년 유럽여행을 한 친구로부터 한국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페소아의 시집을 선물받았으나, 여태까지 영어의 벽에 막혀 읽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또 언급하고 싶은 책이 서두에 나왔던 버트란트 러셀의 '행복의 정복', 기형도 시인의 시를 담은 '기형도 전집'이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포함한 3권의 책이 내 책장에서 가장 손이 많이가는 곳에 위치해있다.러셀의 책은 몽테뉴의 '수상록'과 함께 오늘날 대부분의 자기 계발 서적의 원조격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알고 나서부터는 다른 자기 계발 서적이 그저 잡다한 종이 뭉치에 불과하지 않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 기형도 전집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질투는 나의 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순천 여행에 관한 수필이 있었는데 당시에 순천이라는 도시를 향한 막연한 이끌림을 갖고 있던 내가 크게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이유였을진대, 처음 그 산문을 읽었을 때는 어느 누군가와도 공감할 수 없었던 내가 오래 전에 죽은 시인에게 공감을 느낀다는 것에 소름이 돋았었다.


- 지금

뮌헨에 와서 처음에 가장 아쉬웠던 것이 내가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행복의 정복', '기형도 전집'을 가져오지 못한 것이었다. 23kg의 적은 수화물 제한 때문에 책을 넣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와서 읽고 있는 한글로 된 텍스트는 오로지 여행 안내 책자나 인터넷 뉴스 뿐이다. 코난 도일에서 부터 페르난도 페소아까지 많은 작가와 책을 거치면서 나는 꾸준히 달라져왔는데, 이곳에서 그런 훌륭한 간접 경험들을 같이 할 수 없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이 책들의 지원이 있다면 조금 더 깊게 이곳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쩌다보니 이런 긴 글을 쓰게 되었는데, 이 글은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단순한 정리일 뿐이다. 다만 누군가와 어떤 부분에서든지 공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발행'버튼을 눌러둔다.



* 내 인생 '최고'의 책이 아닌 삶의 '이정표'였던 책 10

1. 아서 코난 도일 - 셜록홈즈 시리즈

2. 나관중 - 삼국지 연의

3. 이사카 코타로 -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4. 김용 - 소오강호

5. 괴테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6. 산도르 마라이 - 열정

7.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픽션들

8. 버트란트 러셀 - 행복의 정복

9. 기형도 - 기형도 전집

10. 파스칼 메르시어 - 리스본행 야간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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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독일 교환학생 2012. 10. 17. 09:03

독일 수업과 한국

미국과 핀란드같은 다른 나라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보내고 있는 친구들과는 다르게, 사실 나는 과제의 압박을 거의 느끼지 않고 있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도 수업시간에 어떤걸 배웠는지만 잘 표시해놓고 시험기간 며칠 전에 한번 정리해놓고 그걸 외우는게 내 공부의 전부였던지라 그때 역시 과제의 압박을 느끼진 않았던 것 같다. 아, 물론 아무것도 몰랐던 1학년 1학기 때는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인다는게 뭔지 알았었지만.

여기서 내가 듣는 수업은 총 5개. 하나는 내가 평소에 관심이 있었고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듣고자 했던 Airline Management, 두번째는 Intercultural Communication(IC), 다음으로 Management across the borders and cultures, American Humor & British Humour, German Grammar in English. 이름은 이와 같다. 항공경영과 독일 문법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적당히 대학교 2학년생 정도면 무난하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교양 수준의 수업이다.

기본적으로 독일의 수업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일반적인 렉쳐 강의가 있다. Airline Management나 German Grammar in English가 그러한 과목인데, 원론적인 수준의 내용을 교수가 강의하는 방식이다. 학생들은 대부분 질문하기 보다는 질문을 받는 상황일 때가 많다. 교수법 자체는 별로 메리트가 없지만, 한국에서 그다지 선호되지 않는 '랩탑'과의 시너지는 상당하다. 한국에서는 누군가가 수업시간에 노트북을 꺼내면 교수에 따라서 좋은 소리를 못들을 가능성이 있지만, 여기서는 그런 일은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수업에서 교재가 없고 강의노트와 파워포인트를 통해 내용이 진행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필기를 꼬박꼬박할 수 밖에 없다. 덧붙이자면 교재가 없는 이유는 교재가 비싸서다. 적어도 내가 듣는 모든 과목은 책이 필요가 없다. 교수는 아예 책값이 비싸기 때문에 학생들한테 책을 사라고 할 수 없으니, 심층적으로 알아보고 싶으면 책을 한번 살펴보면 좋을 것이라고 한다.

세미나 형식의 강의에서는 교수가 앞에서 이론 같은 것을 열심히 설명하고, 학생들은 언제든지 손을 들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유럽 애들은 손을 들어 말하는 것을 전혀 망설이지 않는다. 알더라도 조용히 있는 한국과는 다르게 여기서는 조금만 알아도 일단 입을 떼고 보는 것 같다. 교수는 그러한 반응들을 어느 정도 예상하거나, 혹은 그렇지 않았더라도 그 반응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질문을 해나가는 형식이다. 그러다 보면 다시 교수가 진짜로 말하고 싶은 얘기로 돌아오게 된다. 이러한 방법은 이해력 측면에서 매우 훌륭하다. 앞에서 언급한 수업 가운데 Management across the borders and cultures가 이러한 형식이다.

Intercultural Communication이라는 과목은 교수가 국가나 문화간의 '일반적인' 특징들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면,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자기의 나라에 대해서 말을 보태고, 다양한 툴을 통해서 그 성격들을 분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유럽에는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이라는 교환학생 시스템이 있어서 매우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수업들이 꽤나 잘 돌아간다. 만일 한국 대학교에서 이러한 것을 시도한다면 고작해야 대다수의 한국인, 중국인들과 몇몇 인도, 일본, 유럽인들이 자리를 겨우 메워 한국인들은 막상 말도 제대로 못할 것 같은데, 여기서는 한국인이 오히려 유니크하기 때문에 적절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어서 도움이 된다. 아무튼, 이렇게 액티비티 위주의 과목은 언제나 흥미롭다.

사실 앞의 것을 얘기하기 위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수업시간의 분위기다. 일단 수업시간에 자는 친구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수업이 연강으로 일주일에 한번만 진행되지만, 적어도 2주가 지난 지금 수업시간에 자는 친구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 렉쳐 강의의 경우 때로 조는 친구들이 있지만, 대부분 잠이 오면 그냥 나가서 화장실을 가거나 한다. 한국에서 처럼 엎드려 자는 친구는 아마 앞으로도 못볼 것 같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바깥 출입이 자유롭다. 출석체크가 그다지 중요치 않고, 180분 수업에 150분을 늦어도 수업을 마치고 출석을 체크할 수 있다. 당연히 수업 중간에 왔다갔다 하는 것도 가능하며, 심지어 중간에 짐을 싸고 나가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교수는 그에 대해 정말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얘기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수업 중간에 나가는 학생을 막기 위해 앞뒤로 두번 출석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 유럽인들이 매우 놀랄 것 같다. 한국의 문화가 별로고, 유럽이 선진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아마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그러할 것이다. 다만 교수가 단지 자신이 가르치는 것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것들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적어도 수업에 관한 한, 유럽의 방식이 나에게는 더 맞다. 한국의 교육이 창의성을 죽인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로 맞다. 한국의 교육이 암기 위주의 교육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말도 맞다. 심지어 이곳의 경우 과제를 내줘도 그냥 한번 잘 알고 오라는 뜻으로 내는 경우가 많다. 다른 유럽의 대학들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또 수업 마다 또 다를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다음 시간에 어떤 부분을 하니까 미리 읽고 답을 찾아와라." 라는 식의 과제가 보통 주어진다. 물론 본격적으로 수업이 무르익으면 수많은 과제가 쏟아지겠지만 말이다. 시험의 경우에도 한국에서는 다 외워서 치는 것이 많다. 물론 계산이 필요한 과목들은 계산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듣는 대부분의 과목들은 암기가 기본으로 깔려있다. 반면에 여기에서는 큰 그림을 그린다. 아직 시험을 치르지 않았지만, 교수의 예고에 따르면, 적어도 시험 문제 자체가 '수출의 6가지 요소를 쓰시오' 따위의 한심한 수준은 아니다. 대개 'Incongruity Theory는 무엇이고 이에 대해 설명해보라'의 수준에서, '당신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 진출을 위해서 고려해야 할 위험요소들에 대해 생각해봐라' 정도의 수준이다. 당연히 후자의 경우가 훨씬 사고력을 많이 요하고, 그에 따른 성장성을 보장한다.


위 기사를 보면, 한국의 방식이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은 쉽게 할 것이다. 물론 교육은 역시 핀란드가 좋고, 한국이 나쁘다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측면에서 다소 치우쳐서 작성된 느낌도 있지만 어쨌거나 효율적인 측면에서 한국은 그다지 훌륭한 교육을 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도 있고, 또 훌륭한 전달력을 가진 지식채널e '핀란드 편'도 있으니 한번 보면 좋을 것 같다.

아무튼 상황이 다 다르고, 뮌헨이냐 베를린이냐, LMU냐 HM이냐, 이과냐 문과냐에 따라 수업의 질도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느낀 것은 독일의 것이 '낫다'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서술형이라는 허울 좋은 틀을 갖춘, 실상 해당 부분 전체 암기를 요하는 시험 방식은 절대 백점짜리 방식이 아니다. 또 사실상 책의 저자 대신 교수가 책의 내용을 주르륵 읽어주면서 이것은 이러하다, 저것은 저러하다라고 외치는 방식은 오히려 빵점에 가까운 수업이다. 언제나 참여가 필요하고, 아는 만큼 얻어갈 수 있는 이곳의 방식은 한국에서 책과 씨름하던 나에게는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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