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tunasalmon

Inspired by Fernando Pessoa

Rss feed Tistory
Archive/영화 2012. 11. 10. 03:57

인사이드 잡 (Inside Job, 2010)


진작부터 보려고 벼르다가, 마침 오늘 땡겨서 보게 된 인사이드 잡. 영화 폴더에 넣어야 할 지, 다큐멘터리 폴더에 넣어야 할 지 고민하다가 그냥 영화 폴더에 넣기로 했다. 전형적인 아메리칸 스타일의 다큐멘터리였다. 예전에 다큐멘터리사 수업시간에 '마이클 무어 뒤집어보기'라는 영화를 본 이후로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다큐멘터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지만, 영화 자체는 꽤 잘 만들어졌다. 몇 장면 캡쳐 + 매우매우매우 간단한 설명.


친절하게도 본격적인 씬이 들어가기 전에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설명을 해준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인한 세계 금융위기를 다루는 매체는 아주 많지만, 아마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이슬란드의 선진 경제가 무너진 것으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사실 아이슬란드가 경제 강국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한번 공부를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슬란드 경제 붕괴와 미국 경제 위기 '주범'들의 행태를 연관시킨 것이 설득력이 있었다.


결국 모든 것의 시작은 저 대단한 '가진 자' 들이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 것에서 부터 비롯된 것. 경영학 전공자로서 거의 대부분의 높으신 분들이 더 많이 갖고자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매우 불편했다. 학력과 부의 대물림의 상관관계를 느낄 수 있었던 부분. 사실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는게, 세상에 그 분야에 빠삭한 사람이 널려있지는 않다는 점이 인사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고려해볼만한 요소였을 것이다. 과거의 실패가 있었지만, 그 실패를 해본 사람이기 때문에 이번엔 다를 것이라는 믿음이랄까? 그런 것들이 이들이 여전히 높은 자리에 있는데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메리칸 스타일 아니랄까봐 마지막 씬을 자유의 여신상으로 가져갔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장황하지 않고 간결한 다큐멘터리였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그 메시지의 내용을 잘 전달했다. 한번 쯤 봐도 좋을 영화. 다만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일방적인 관점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Archive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포 선라이즈 (Before Sunrise, 1995)  (0) 2013.12.11
신수호 86부작 리뷰  (0) 2013.02.02
타인의 삶  (1) 2012.05.02
건축학개론  (1) 2012.04.05
신삼국 명장면 리뷰 5 (E)  (4) 2012.03.31
,
Archive/음악 2012. 11. 6. 08:52

Elgar - Pomp and circumstance(위풍당당행진곡)

내친 김에 좋아하는 음악을 몇 개 더 풀어볼까 한다. 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이다. 아마 TV프로그램 '도전 골든벨'을 본 사람이라면 매우 익숙한 음악일거다. 이 음악을 처음 좋아하게 된 것은 아마 고등학교 2학년때 였던 것 같다. 스티브 바라캇이나 막심 므라비차, 야니, 엔야 같은 뉴에이지 혹은 크로스오버 계열의 음악과 뮤지컬 음악에 빠져있던 때였는데, 특히 내가 가장 좋아했던 앨범은 디즈니 OST 앨범 가운데 하나인 'Disney forever'였다. Pomp and circumstance는 바로 이 음반의 마지막곡으로 Fantasia2000이라는 음악 애니메이션의 수록곡이었다. 

이 음악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점층적으로 고조되다가 한번에 팡 터뜨리는 부분이다. 음악을 공부하지 못해서 정확히 어떤 명칭으로 설명하는 지는 모르겠으나, 한번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다.(영상에서는 4분 36초부터) 수년간 수백번은 반복해서 들은 노래이지만 언제나 그 부분에 이르러 소름이 쫙 돋으면서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음에 여전히 나는 이 곡을 듣는다.

직접 연주를 보는 것에는 비할 바 아니겠지만, 눈을 감고 헤드셋을 귀에 꽂은 후에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귀와 심장에 집중해서 음악을 들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
Archive/음악 2012. 11. 6. 08:31

가을방학 - 근황

가을방학의 신곡 <근황>을 11월 가을에 비엔나의 호스텔에서 접했다. 

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을 듣고 싶어 유투브를 켰다가 목소리를 듣고 싶어 가을방학 김재훈으로 검색했더니 못보던 음악이 딱! 

'가을방학'은 박정현, 브라운아이드소울, 페퍼톤스와 함께 (혹은 보다 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다. 

이들의 전곡이 나에게는 다 의미가 있고, 또 그만의 추억이 있다.



잡은 손을 놓고 잠시 흔들고 
의미 없는 인사말 몇 번으로
이별은 이뤄지고

돌아오는 길을 홀로 걸으며
혼자가 된 자신에 감탄하며
조금은 웃었다고

만남이라는 사치를 누리다 
헤어짐이라는 오만을 부린 우리
한 사람이 떠나갈 땐 참 많은게 떠나 

다들 잘 지내나요 난 별 일 없는데
다들 행복한가요 난 웃고 있는데
세상 속 우리 모습이 이토록 슬픈 건
내 못난 마음이 잔뜩 흐려져서겠지

만남이라는 사치를 누리다 
헤어짐이라는 오만을 부린 우리
한 사람이 떠나갈 땐 참 많은게 떠나 

그댄 잘 지내나요 난 별 일 없는데
정말 행복한가요 난 울고 있는데
멀어진 그대 모습이 이토록 슬픈 건 
한때는 그 누구보다 가까웠던 사람이기에


처음 들었을 때는 기존 그들의 음악들과 조금 다른 듯한 인상을 받았다. 멜로디가 생각보다 빠르고 어딘가 익숙한 코드 진행이랄까? 여러번 듣다보니 그런 느낌은 싹 가셨는데, 처음에는 확실히 기존의 가을방학과는 다르고 다소 통속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 곡에서도 계피의 목소리는 이번에도 역시 그녀가 갖고 있는 감성의 공감각적인 면모를 잘 표현한다. 목소리로 풍경을 그릴 수 있는 소리꾼은 드물지만, 계피는 그런 소리꾼이다. 나는 브로콜리너마저가 아닌 가을방학에서의 계피가 더욱 좋다. 

<가을 겨울 봄 여름> 이라는 곡도 이번에 싱글로 나온 것 같은데 아직 별 감흥은 없다. 조만간 또 푹 빠지게 되겠지만... 그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만 찾아 듣는 나는 이번 신곡이 참 반갑다. 노래를 클릭하고 처음 피아노 반주가 들려오면 곧바로 풍경에 빠져들게 되고, 다른 일을 동시에 진행하기 힘들어진다. 세 달 만에 휴대폰 음악 목록을 바꿔볼까 싶다. 겨울 뮌헨과 잘 어울리는 노래가 될 것 같다.

,
Archive/유럽 여행 2012. 10. 31. 16:42

체코 프라하 #1. 여행의 기록

체코 프라하 여행 기록

(12.10.31 ~ 11.01, 2박 2일)

* (금액), [입장하지 않은 곳]


10월 30일 (뮌헨 -> 프라하)

23시 30분 유로라인 버스를 타고 프라하 도착. (9유로, 이후 체코 크로나) -> ATM 인출(1000) -> 칫솔 구입(22) -> 일회권 구입해서 Sir Toby's Hostel로 이동(24) -> 숙박비 계산(243)

* 떠나는 날 낮에 숙소까지 가는 방법만 폰으로 찍어서 갔던 기억, 꾸물대다 늦게 나와 버스를 놓칠까 마음이 급했던 기억, 오밤중에 숙소를 못찾아 헤맸던 기억, 숙소에서 보관함을 실수로 망가뜨렸던 기억.


10월 31일 (프라하 1일)

아침 숙소에서 흰 소세지 구이 -> 일일권 구입(60) -> [국립박물관] -> 바츨로프 광장 -> 기념품 컵 구입(49) -> [팔라디움] -> [via musica] -> 구시가지 광장, 얀 후스 동상, [틴 성당], 천문시계, 성 미쿨라슈 교회, [나로드니 미술관] -> 유대인 지구 -> 마네스 다리(Manesu most) -> 카프카 박물관(120) -> 엽서 (30) -> 까를교 -> 뜨레들로(60) -> 존 레논 벽 -> 아이들 성당 -> ATM 인출(600) -> KFC 버거(29) -> 숙소에서 라면/프리비어

* 아무런 정보 없이 그저 발길 닿는대로 걸었던 기억, 마네스 다리 앞에서 사진을 찍어달라는 관광객이 얼마면 되냐고 물었던 기억, 사진에 보이는 곳에서 백조의 발을 봤던 기억.


11월 1일 (프라하 2일)

아침 숙소에서 메밀소바 -> 일일권 구입(60) -> 프리투어 참가(?유로) -> 바츨로프 광장 -> 프라하 성(125), 베네시 동상, [로레타 성당], 4조원 건물, [스트라호프 수도원], 황금소로 -> 카프카 누이집에서 기념품 달력 구입(100)-> 꼴레뇨, 필스너 맥주(180) -> 성 비투스 대성당 -> 까를교 -> 천문시계 -> 전망대 보려했으나 실패 -> 맥도날드 버거(20), 핫와인(30) -> 돈 지오반니 마리오네뜨 인형극(400) -> 맥도날드 버거(20) -> 플로렌스 터미널에서 빈으로 이동

* 파울 클레 달력을 살까 고민하다 결국 클림트와 프리드리히를 샀던 기억(무하를 샀었어야 했는데...), 벨벳 맥주가 우리 바로 앞 테이블에서 동이 나 못먹었던 기억, 비투스 대성당에서 투어 가이드 님께서 누워서 사진을 찍어주셨던 기억, 조마조마 플로렌스로 이동해서 맥도날드 버거 하나를 더 먹을 수 있었던 기억.



- 여행경비 : 1720KC (약 103200원)

- 최다지출 : 인형극(400), 숙박비(243), 꼴레뇨(180)

,
Archive/오늘의 생각 2012. 10. 28. 04:47

내 인생의 책들

"글을 쓰려는 생각을 버려라. 그 대신 글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보라. 세상으로 나가라. 해적도 되어보고, 보르네오의 왕도 되어보고, 소련의 노동자도 되어보라. 기본적인 신체적 욕구를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생활을 해라." ... 몇 년 동안 이렇게 생활하고 나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시기에 도달하면 글을 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페이스북을 하던 중에 군시절 후임 녀석의 글을 보게 되었다. 언젠가 읽었던 글이다. 버트란트 러셀의 '행복의 정복'. 내 인생의 책을 몇 권 꼽자면 아마 이 책이 열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것 이다. 문득 내 독서의 역사랄까, 그리 깊지도 멀지도 않은 내용이지만 한번 무작정 되돌아보고 싶어졌다.


- 내 인생의 첫 시리즈, "셜록홈즈 전집"

내가 기억하기로 내 인생의 첫 책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읽었던 셜록홈즈 전집이었다. 어쩌면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수도 있다. 1권이 사라진 지옥선이라는 제목이었고, A5 사이즈로 총 30권짜리의 전집이었다. 삼촌이 사둔 것이었는데, 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한권 두권 읽기 시작해서 아예 30권을 전부 통째로 집에 들고와서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이 때부터 나는 책장을 꾸미는 것이 즐거웠다. 그 이후로 물론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거나, '엄마도 모르는 100가지 과학 이야기' 혹은 게임북(요즘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하이퍼텍스트 처럼 A라고 생각하면 30페이지로, B라고 생각하면 31페이지로 가라는 식의 책이다.) 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었다.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친척집에 다녀올 때면, 꼭 서점에 들러 책을 한권씩 사오곤 했던 기억이 난다. 셜록홈즈 전집 덕분에 그 이후로 나는 꾸준히 추리소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모리스 르블랑의 뤼팽 시리즈를 친구놈과 함께 돌려보기도 했었다. 나중에는 애거서 크리스티나 앨러리 퀸을 좋아했다. 


- 가장 영향이 컸던 책, "삼국지"

그 다음으로 내가 기억하는 지점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그 친구 집에 있던 '수호전'을 읽었던 것이다. 총 10권짜리의 수학의 정석만한 책이었는데, 간간이 삽화가 들어있었다. 이후로 나는 삼국지를 빌려 읽었고, 중국 고전소설 매니아가 되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관련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심지어는 삼국지 관련 홈페이지를 만들기도 했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는 요즘처럼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와 같은 것들이 대중화되어 있지 않았고, 개인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었는데, 우리끼리 용어로 '삼국지계'라고 불렀던 삼국지 사이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었다. 순위사이트라는 개념도 있어서, 삼국지 관련된 사이트 중에 어떤 사이트가 몇번째로 잘나가냐 하는 것까지 매기는 문화도 있었다. 사이트의 가장 중요한 컨텐츠로는 '모의전쟁'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토론을 통해서 승패를 가리고 승리하면 다른 진영의 도시 하나를 얻는 시스템이었다. 그리하여 저 삼국지라는 책 덕분에 나는 중학교 3년, 고등학교 1년간 웹디자인을 공부했을 뿐만 아니라, 토론까지 자주 하게 되었으니 어찌보면 지금의 나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경험이었을 수도 있겠다.


- 서재

문득 초등학교 6학년 때 잘사는 친구네 집에서 서재를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신 부모님은 책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학구적인 분도 아니셨기 때문에 우리 집에는 내가 산 책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내 버킷리스트의 꼭대기에는 항상 내 서재를 갖는 것이라는 문구가 자리잡게 되었다.


- 지적 허영

중고등학교 시절엔 고전에 빠져들었다. 한창 내가 세상의 중심인 것 같은 나이. 내가 주인공이고 나머지는 어쩌면 들러리,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나를 중심으로 프로그램 되어 있을 거라는 좁은 프레임에 갇혀 있던 그 나이. 이것은 거만함이라기 보다는,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그 각자를 위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아무튼 이 시절에 나는 책에 대한 허영이 컸던 것 같다. 책을 꾸준히 사모으는 것에 대해 스스로 뿌듯해했었던지, 옷을 사고 외식을 하는 돈은 너무나도 아까웠지만 책을 사는 일은 당연한 일이 되었고, 한달 용돈이 훨씬 넘는 20만원치 책을 사기도 했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게시판이 있었는데, 그 게시판에는 책장을 자랑하거나 책을 리뷰하고 추천하는 글들이 매일 같이 올라왔었다. 자연 내 여가의 중요한 부분은 그러한 글들을 보면서 리스트를 만들고, '꼭 갖고 싶은 그 책'을 사모으는 것이 되었다. 책장이 채워질수록 읽지 않은 책도 많아졌다. 이 당시 사모았던 책은 주로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나온 시리즈들이었는데, 주로 폴 오스터, 움베르토 에코, 파트리크 쥐스킨트, 아멜리 노통브, 안톤 체호프, 오르한 파묵의 책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작가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와 아멜리 노통브.

흥미로운 것은 다행스럽게도(?) 내가 이 당시에 나의 지적 허영을 경계했다는 점이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얘기를 언제나 듣고 있었지만, 사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지 않았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고, 아는 듯이 무언가에 대해서 토론을 했지만, 어쩌면 아는 것은 단지 제목과 작가 뿐이지 않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물어보던 시기였다. 어린 나이라 그랬던지 쉽게 극복되지 않았던 이 생각은 군에 가서야 사라지게 되었다.


- 대학 시절의 책, "이사카 코타로"

대학에 들어 오면서는 가벼운 책들, 이사카 코타로의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사카 월드라고 부르는 그의 책들은 주인공이 저마다 달랐는데, 어떤 책의 주인공이 다른 책에서는 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소설들이 센다이라는 일본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설정은 매우 흥미로웠다. 처음 읽었던 책은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였다. 아마 1학년 가을 쯤 되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쉽게 읽히는 코타로의 소설을 즐겨 읽기 시작했다. 한 13편 정도 읽은 것 같다. 코타로는 '다빈치 코드'의 댄 브라운처럼 영화를 서술하듯이 대사 위주로 글을 쓰기 때문에 속도감이 있어 마치 영화를 한 편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코타로의 책 중에 나는 '오듀본의 기도'와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를 가장 좋아한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친구들에게 선물도 자주했었다. 묘하게 신비하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설이다. 이 책을 쓸 때만 해도 코타로는 꽤 괜찮은 작가였다. (심지어 오듀본의 기도는 그의 데뷔작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나치게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다보니 내용이 너무 가벼워졌고, 짜임새가 엉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2009년 겨울에 '그래스호퍼'를 마지막으로 코타로의 책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어졌다. 하지만 다른 책들은 몰라도 '오듀본의 기도'와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믿어도 좋다!


- 미드는 재미 없어, 중드가 재밌어.

나는 중국 무협소설을 굉장히 좋아한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김용의 무협만을 좋아한다. 한국 판타지, 무협, 중국의 여타 무협 장르들은 그다지 재미가 없다. 김용의 무협은 총 14편인데, 모두가 중국의 시대적인 배경을 아우르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내가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확실히 수호전과 삼국지 때문일 것이다. 고2 이후로 이 시리즈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한참 노다메 칸타빌레나 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외국 드라마들이 유행할 당시에도 나는 '소오강호'나 '연성결'같은 드라마를 다운받아서 밤새 보곤 했으니, 이제서야 말하지만 누군가에겐 '오덕'같아 보였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아직도 미드나 일드보다는 짜임새는 덜하지만 김용의 무협 드라마가 더 좋다. 굳이 이유를 덧붙이자면, 미드는 지나치게 치밀하려 하고, 일드는 마음에 드는 스토리가 없다. CG도 티나고 내용도 터무니 없는 얘기지만 일단 사극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 중드가 재밌다.


- 군시절의 책들

사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내용은 여기 있다. 어차피 이 긴 글을 읽는 독자는 아무도 없을거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만일 여기까지 읽었다면, 내가 앞의 모든 책들과 지금 말하려는 책들 사이에 구분선을 두고 '어린 시절의 책'과 '군시절의 책'을 다르게 얘기하고 싶어한다는 점을 알아주면 좋겠다.

24시간 3교대 크루 근무, 11개월 왕고, 기지 도서실. 이러한 조건 덕분에 나는 책이며 영화며 군시절에 원없이 볼 수 있었다. 24시간 크루 근무를 한 덕분에 근무 시간 외에는 거의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의 혜택을 받아 충분한 자유시간을 누릴 수가 있었고, 11개월이나 왕고였기 때문에 그 크루 근무 스케쥴을 내가 짤 수 있었다. 또 우리 기지에는 기지 도서실이 있었는데 소장된 책이 매우 많지는 않았으나 20대 청년들을 타겟으로 하는 터라 있을 책은 다 있었다. 

앞서 언급했던 코타로를 멀리하게 되었던 이유는 군시절 나의 관심이 정통 글쓰기에 있었던 탓이다. 다큐멘터리 피디를 꿈꾸며 토익이나 한자 자격증, 몸을 만들고 기타를 치는 것에 꾸준한 흥미를 느낄 수 없었던 나는 군대에서 아예 2년 동안 책을 읽음으로써 글쓰기에 대해 공부해 보기로 했다.

25개월 간의 군생활 가운데, 훈련소와 휴가를 제외하면 약 20개월 간 나는 180권의 책을 읽었다. 처음의 목표는 300권이었지만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영화공부를 한답시고 고전들을 매일 야근 때마다 보지 않았다면, 어쩌면 250권 정도는 읽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지적 허영을 끝내자는 스스로의 다짐 때문에 빌려놓고 읽지 않았거나 혹은 대충 읽은 책들은 모두 안읽은 것으로 여기기로 했다. 

빌린 책들은 날짜를 적고 평점을 매겼다. 아쉽게 그 평점이 적힌 다이어리가 한국에 있어서 지금 완전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아마 최고 평점을 받았던 책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인 것 같다.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산도르 마라이의 '열정',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와 같은 소설들도 9점을 넘게 받았다. 또 카프카의 책들이나 '백년 동안의 고독', 몇몇 훌륭한 한국 소설들에도 좋은 평점을 줬었다.

한편 '금강경'을 읽으려고 시도해봤으나 너무 구절이 어려워 도중에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가장 두꺼운 책은 '세계문학사'였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를 찬양해 마지 않는 그 책 덕분에 문학사에 대해 조금 체계가 잡혔'었던' 적도 있었다. 보르헤스의 책들을 열심히 읽었던 기억도 난다. 마침 기지도서실에 민음사에서 나온 전집이 있었는데,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서 읽고 나서 또 따로 주문했다. 다행히 누구도 보르헤스의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방해없이 2년 동안 그 책들을 독차지할 수가 있었다. '보르헤스의 지팡이'와 같은 일종의 해설집도 열심히 빌려보았었다. 이 모든 하나하나가 괜찮건 혹은 그렇지 않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장본인들이다.


- 최고의 책

하지만 내가 군시절에 읽은 책 가운데 가장 대단했던 책은,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다. 우연히 BAT실(활주로에서 버드스트라이크 방지를 위해 새를 쫓는 역할을 하는데 같은 중대 소속이었다.)에서 발견한 주인없는 책이었는데, 책을 읽는 내내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들, 내가 오랜 시간에 걸쳐 깨달은 것들을 완벽한 언어로 적어내려가고 있는 이 책은 사실 몽테뉴와 페소아의 생각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잘 버무린 것이다. 아직도 이 책의 첫 페이지를 펼치며 느낀 감정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우리 모두는 여러가지 색깔로 이루어진 누더기. 헐겁고 느슨하게 연결되어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펄럭인다. 그러므로 우리와 우리 자신 사이에도, 우리와 다른 사람들 만큼이나 많은 다양성이 존재한다.'

이 이후로 나는 페소아의 열렬한 팬이 되었고, 실제로 리스본 여행에서 페소아의 무덤을 보기 위해 제로니모스 수도원을 고생 끝에 가기도 했으니 나란 놈에게 책의 영향력은 과연 엄청나다. (작년 유럽여행을 한 친구로부터 한국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페소아의 시집을 선물받았으나, 여태까지 영어의 벽에 막혀 읽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또 언급하고 싶은 책이 서두에 나왔던 버트란트 러셀의 '행복의 정복', 기형도 시인의 시를 담은 '기형도 전집'이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포함한 3권의 책이 내 책장에서 가장 손이 많이가는 곳에 위치해있다.러셀의 책은 몽테뉴의 '수상록'과 함께 오늘날 대부분의 자기 계발 서적의 원조격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알고 나서부터는 다른 자기 계발 서적이 그저 잡다한 종이 뭉치에 불과하지 않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 기형도 전집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질투는 나의 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순천 여행에 관한 수필이 있었는데 당시에 순천이라는 도시를 향한 막연한 이끌림을 갖고 있던 내가 크게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이유였을진대, 처음 그 산문을 읽었을 때는 어느 누군가와도 공감할 수 없었던 내가 오래 전에 죽은 시인에게 공감을 느낀다는 것에 소름이 돋았었다.


- 지금

뮌헨에 와서 처음에 가장 아쉬웠던 것이 내가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행복의 정복', '기형도 전집'을 가져오지 못한 것이었다. 23kg의 적은 수화물 제한 때문에 책을 넣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와서 읽고 있는 한글로 된 텍스트는 오로지 여행 안내 책자나 인터넷 뉴스 뿐이다. 코난 도일에서 부터 페르난도 페소아까지 많은 작가와 책을 거치면서 나는 꾸준히 달라져왔는데, 이곳에서 그런 훌륭한 간접 경험들을 같이 할 수 없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이 책들의 지원이 있다면 조금 더 깊게 이곳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쩌다보니 이런 긴 글을 쓰게 되었는데, 이 글은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단순한 정리일 뿐이다. 다만 누군가와 어떤 부분에서든지 공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발행'버튼을 눌러둔다.



* 내 인생 '최고'의 책이 아닌 삶의 '이정표'였던 책 10

1. 아서 코난 도일 - 셜록홈즈 시리즈

2. 나관중 - 삼국지 연의

3. 이사카 코타로 -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4. 김용 - 소오강호

5. 괴테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6. 산도르 마라이 - 열정

7.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픽션들

8. 버트란트 러셀 - 행복의 정복

9. 기형도 - 기형도 전집

10. 파스칼 메르시어 - 리스본행 야간열차

'Archive > 오늘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배웠다 - 샤를르 드 푸코  (3) 2013.12.31
프라두1  (0) 2012.03.15
,
TOTAL TODAY